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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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14)

김영정과 안윤손은 재차 차자를 올렸다.

<전하께서 효사묘에 친제를 올리심으로써 모자의 지극한 정의를 펴고자 하시는 뜻은 효성에서 우러나신 뜻이오나 백관을 거느리고 친제를 거행하시는 것은 종묘의 제사를 흉내내는 것으로 선왕, 선후의 제사를 받드는 도리에 어긋나오니 진실로 친제를 거행하실 수 없는 일이옵니다. 전하께서 효사묘를 지으시고 신주를 세우신 것만도 선왕의 유교를 무너뜨리신 것인데, 친제를 거행하시는 것은 종묘의 제사를 흉내내는 것으로 선왕, 선후의 제사를 받드는 도리에 어긋나오니 진실로 친제를 거행하실 수 없는 일이옵니다. 친제를 거행하시는 것은 더욱 대의(大義)에 어긋나옵니다.>

왕이 효사묘에 친제를 올리는 것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다.

왕은 노하여 어서(御書)를 내렸다.

<경들은 다만 대의에만 구애되고 인정의 간절함은 헤아리지 않고 여러 날 동안 상소를 계속하니 그것이 무슨 고집인지 모르겠노라. 회묘는 비록 선왕께 허물이 많았지마는 왕통(王統)을 잇게 한 공이 또한 무거운데, 20년 동안이나 오래도록 굶주린 혼령이 되었으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슬픔이 마음 속에 핍박하여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내가 어찌 훗날 간언을 듣지 않은 암군(暗君)이라는 이름을 얻을까 두려워하여 자친의 지중한 은혜를 잊어버리겠는가.>

마음먹은 대로 강행하겠다는 뜻이었다.

왕의 확고부동한 뜻이 어서(御書)에 나타나 있었지만 그래도 대간은 여전히 상소질을 계속하여 왕의 뜻을 막았다.

그러나 왕은 차근차근 효사묘에 친제를 올릴 마음의 준비를 다지고 우선 조석 상식을 올리는 일부터 결행하였다.

<효사묘에 아침 저녁으로 전(奠)을 올릴 적에 삼품직 이상의 내관으로 하여금 전을 올리게 하려 하였으나 내관들은 모두 미혹(迷惑)하고 또 삼품직 내관이 몇 사람 없으니 삼품직의 종친(宗親)으로 대신케 하라.>

이러한 어명을 내린 것은 우선 효사묘의 비중을 그만큼 높이려는 의도였다.

왕은 또 예조(禮曹)에 명하여 효사묘에 친제할 때와 조석 상식에 거행할? 의례를 제도화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예조에서는 정승과 승지와 대관과 홍문관 등에 두루 물어서 왕의 친제를 막지 않되 종묘의 제사보다는 격을 낮추는 선에서 의례를 마련하여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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