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관 건양대 교수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를 가졌던 친구가 있었다. 곱고 예쁜 딸을 챙기는 아버지로서의 정성이 대단했다.

어느 날 꼬마들의 재롱잔치에 초대되었다. 발표회를 하는데 자기 딸이 맨 구석에 서서 노래를 했단다. 한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작은 역할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창피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단다.

그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술판을 벌였다.

촌지를 줬어야 한다는 친구도 있었고 노래나 춤을 가르치는 학원엘 다녀야 한다는? 친구도 있었단다.

다음날 그 친구는 당장 딸의 담임선생을 찾아갔다.

그리고 음악 학원에도 등록을 시켰다.

밤새 술을 마신 친구는 자신의 딸이 당연히 무대의 중앙에 섰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주연이라면 무대 위에는 아무도 설 수가 없다. 조연이 없으니 주연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는 주연도 필요하고 조연도 필요하다. 무대 위에는 중앙에서 옷을 벗는 역할이 있는가 하면 무대 뒤에서 벗어 놓은 옷을 챙기는 역할도 필요한 것이다.

30, 40대 중년들이라면 대부분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나 장군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소박한 사람들이라도 파출소 소장이나 동네 이장쯤은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다르다. 백댄서나 코러스, 개그맨, 스포츠맨이 제일 흔한 선호직종이란다. 현란한 조명이나 화려한 의상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을 소신껏 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들은 누구와도 직접 눈을 맞추려 들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온몸을 흐느적 거린다. 무언가 알듯 모를 듯한 말들을 중얼거리며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한꺼번에 한다."

요즈음 젊은 학생들의 행동거지를 누군가 특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모두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취해 있는 모습이다. 사람과 사람의 연대나 이웃과 이웃의 유대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취해 있는 신세대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충실하고 만족하기 때문에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다. 언제나 움직이기 때문에 행동이 민첩하다.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세대다.

우리는 간혹 맡은 역할이 주연일 뿐이고 맡은 역할이 조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잠깐 맡은 역할이 작다고 자칫 인생 전체가 조연일지 모른다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의 착각이다.

기호나 숫자를 가지고 놀며,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갖고,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스타일을 즐기는 세대가 요즈음 젊은이들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주연들이다. 기성세대들이 장군이나 대통령으로 크기 위해 노력한 주연들이었다면 신세대들은 백댄서나 개그맨으로 크기 위해 노력하는 주연들인 셈이다.

무대의 구석에 서 있다고 해서 인생이 조연일 수는 없다.

괜한 조바심으로 돈을 들이거나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일에 만족을 느끼며 작은 일에도 행복을 찾는 신세대식 사고가 오히려 새롭다.

'무대 위에 조연은 없다. 다만 역할이 작을 뿐이다'라는 작은 경구가 크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인생에 조연(助演)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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