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적 원칙'은 타이타닉호를 끝으로

재난시 어린이와 여성이 우선 구조돼야 한다는 '기사도적 원칙'은 타이타닉호를 끝으로 영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디스커버리 뉴스가 13일 보도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마카엘 엘린더와 오스카 에릭슨은 1852~2011년 사이 평화시 선박 사고 18건을 분석한 "남자는 제 살 길을 찾아라"(Every man for himself!)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100년 전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배와 운명을 같이 한 선장 E.J. 스미스는 "영국인답게 행동하라"면서 여성과 어린이들을 우선 구명보트에 태웠다. 그 덕에 여성 승객의 생존율은 73.3%로 남성(20.7%)의 4배 가까이나 높았다.

1등실 승객의 생존율은 62%, 2등실 승객은 41.8%, 3등실 승객은 25.4%로 선실 등급별 차이도 확실했지만 어린이 생존율은 어른보다 높았다.

그러나 이런 여성 우선의 '낭만적 비극'은 185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근해에서 침몰한 버킨헤드호와 1912년 북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만 볼 수 있는 드문 사례였다.

영국 해군 함정 버킨헤드호에 타고 있던 643명의 승객 중 생존자는 193명 뿐이었지만 갑판에 굳건히 버티고 서있던 병사들 덕분에 여성과 어린이는 단 한 명도 희생되지 않았다.

당시 함정 사령관 알랙산더 시튼 중령은 상어가 우글대는 해역에서 배가 점점 가라앉고 있을 때 병사들에게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단 3척의 구명보트에 모두 태우도록 명령해 기사도의 전범으로 길이 기록됐고 타이타닉호 사건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연구진이 조사한 이후의 선박 사고 18건 중 11건에서는 여성의 생존율이 남성보다 낮았고 지난해 러시아 유람선 MV 불가리아호 침몰 사고에서 여성의 생존율은 26.9%에 불과해 60.3%가 살아남은 남성에 비해 훨씬 낮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린이의 생존율이 가장 낮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19세기와 20세기 선박사고에서 '여성ㆍ어린이 먼저'의 구호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계급과 국적, 민족에 따라 큰 차이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특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민자나 순례자들은 남녀 구분조차 없이 짐짝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계급과 민족의 여성과 어린이들은 난파 사고에서 우대를 받는 일이 드물었다.

연구진은 선박 사고에서 평균적으로 생존율이 가장 높은 뷰류는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최근 이탈리아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사고에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버킨헤드와 타이타닉을 제외한 16건의 사고에서 선장이 배와 최후를 같이 한 경우는 단 7건 뿐이었다.

연구진은 또 배가 가라앉는 속도에 관계없이 여성은 불리하다면서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배에서는 이기적인 행동이 지배하지만 느린 속도로 침몰하는 배에서는 사회적으로 정착된 행동 양상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기존 가설은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위급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범적인 행동을 강제할 권한이 있는 선장의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즉 남성들의 윤리의식보다는 선장의 결정이 여성의 우선구조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8건의 침몰사고 중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구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은 단 5건에 불과했다.

또 영국 배에 탄 여성들의 사망률이 다른 국적 선박보다 높아 '영국 신사'라는 관념을 무색하게 했다.

연구진은 "타이타닉호의 최후 상황은 여러 면에서 재난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