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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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19)

…깊이 생각하옵건대, 하늘이 꾸짖어 여러 가지 천재지변을 보이는 것은 진실로 신 등의 보잘것없는 자질에 연유하는 것으로 음양을 조화시키는 장법이 잘못되어 성상(聖上)에게 이런 재앙을 만나게 하였으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반성하여 근심과 두려움이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옛날에도 천재지변과 수재, 한재에는 그 허물이 음양을 섭리(燮理)하는 정승과 재상에게 있다 하여 삼공(三公)을 면직시켰던 것이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빨리 신들의 직위를 바꾸시어 덕망과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대신하여 서로 합심하고 공경해서 정성으로써 바로 잡고 실상(實相)으로써 응하여 재앙을 바꾸어 상서가 되게 하면 매우 다행이겠사옵니다. 전하께서도 또한 삼가고 덕을 닦아서 하늘의 견책을 그치게 하소서.>

왕은 화가 치밀었다. 정승 한치형 등의 상소문을 가져와 올린 입직승지에게 호통을 치듯 말하였다.

"신하들이 걸핏하면 하늘의 경계 운운하면서 군주를 꼼짝 못하게 하려하니 신하의 분의(分義)가 이래도 되겠는가? 수재·한재로 흉년이 든 것이 40년래 처음이거나 50년래 처음이라면 놀라서 두려워하겠지만 이와 같은 재변은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데 군주가 하늘의 경계에 조심한다고 할 일을 폐지한다면 팔짱만 끼고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만 하겠는가?"

드디어 9월 15일이 왔다.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언제라도 또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날씨가 그렇게 음산하였지만 세자 책봉일로 예정한 그날을 넘길 수는 없었다.

왕은 왕비 신씨와 함께 월산대군 집으로 거둥하였다.

월산대군 집은 궁궐같이 큰 저택이었다. 품석(品石)은 없었으나 연무장같이 넓은 뜰에는 문무관백이 서열에 따라 정열해 있었다.

익선관에 곤룡포 차림의 왕과 대례복 차림의 왕비 신씨가 옥교가 마련된 대청으로 올라 진좌하자 둥둥둥하고 엄고(嚴鼓)가 울렸다.

시종의 인도를 받으며 계하(階下)에 나타난 여섯살배기 원자는 그야말로 코흘리개였다. 천연두를 앓아 얽은 얼굴에 치기와 어리광만 가득하였다.

장중한 아악이 울려 퍼지면서 세자 책봉식은 거행되었다.

원자는 어리둥절한 채 시종에게 이끌리어 부왕과 모후에게 재배한 후에 왕세자의 정복인 남포(藍袍)로 갈아입고 옥띠를 두른 후에 금빛 찬란한 면류관을 썼다. 원자가 세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예방승지가 큰소리로 세자책봉문을 낭독한 후 세자는 시종에게 이끌리어 다시 어전에 나아가 재배하였다. 세자는 영문도 모르고 시종이 시키는 대로 할 따름이었다.

문무백관이 천호만세를 소리 높이 불러 하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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