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대전사랑시민협의회장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은 문화사적으로 '공자 죽이기'가 주축을 이룬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중국에서는 반대로 '공자 살리기'를 넘어 국가가 주도해 공자주의를 일원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중국이 공자주의를 내세운 것은 복합적인 정치적 목적이 없지 않겠지만 공자주의가 기본적으로 도덕주의를 표방하고 인문정신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변화다. 중국의 공자주의적 변화는 우리나라의 현대 유교문화의 변화 추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도 이미 유교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에 대한 변화의 바람이 있어 왔다.

예컨대 영남에서는 국가사업으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경북 북부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이 완료됐고, 후속 문화사업도 활발하다. 안동의 ‘국학진흥원’ 건립과 관련 국학진흥사업, 소수서원의 재정비, 박물관 건립, 선비촌 설립 등 다양한 유교문화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전개됐다. 이로써 영남 유교문화권의 문화사업은 거의 큰 틀을 이뤘다.

반면 대전을 포함하는 기호지역에서는 아직 이와 필적할 만한 유교문화사업이 진척이 없다. 역사적으로 대전은 기호유교문화권에 속했고, 17세기 이후에는 대전과 연산을 중심으로 하는 호서유학이 기호유학의 중추를 이뤘다.

율곡 이이를 종장으로 하는 기호유학은 그 적통이 연산의 김장생과 김집에 이어졌고, 그것은 다시 회덕의 송시열, 송준길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꽃피워졌다. 이들은 모두 문묘에 배향된 유현들로 예학의 대가들이다. 대전에는 이들과 같은 시기에 북벌을 주도한 이유태, 권시를 비롯해 조선초기의 사육신인 박팽년, 사화기의 김정, 송인수, 송기수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활약했다. 또 동춘당과 남간정사 등 유교관련 유적들도 도처에 산재해 있다. 윤휴의 묘소가 대전 유천동에 있고, 돈암서원 노강서원 윤증고택도 대전과 인접한 논산에 있다.

지난 2003년부터 대전시가 주최하고 지역의 대학연구소가 주관해 실시해 온 호서명현학술대회에서는 호서사림의 학문과 사상 및 역할과 위상을 꾸준히 연구해 왔다. 그 결과는 ‘호서명현학술총서’에 잘 정리돼 있다. 조선후기의 호서사림은 실로 대전과 호서를 넘어서 일국의 정치와 학문과 사상을 주도하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대전학계의 이러한 호서사림에 대한 꾸준한 연구는 아직은 학술적 성과를 집성하는 데 그치고 있다. 대전에 ‘유교문화원’과 같은 연구원을 건립해 기호유교문화의 연구자료를 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호유교를 연구해 영남의 ‘국학진흥원’과 상보적으로 현대 한국 유교문화를 재정비하는 것은 여전한 과제다. 이러한 노력이 아직 가시적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영남에서와 달리 기호에서는 '기호유교문화권 개발'이라는 국가정책이 이제야 태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이러한 기호유교문화권의 개발을 형평성 있고 내실있게 추진하고, 관련 지자체와 지역학계는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전시가 주최하는 제11회 호서명현학술대회가 그 주제를 '대전의 유교문화유산 개발과 활성화 방안'이라고 정하고 있는 것은 시의 적절하다고 본다. 오는 10월 한국문중문화연구원 주관으로 열릴 예정인 이 학술대회를 미리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이 바로 국가의 기호유교문화권 개발계획이 구체적 사업으로 가시화되는 시점이고, 또 유교문화 인프라 구축에 대한 시민의 오랜 여망이 새롭게 결집되고 표출돼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염원이 가시적인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해서는 이 과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갈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기호유교문화권 개발사업과 관련해 대전발전연구원에 대전 ‘유교문화원’ 건립 추진을 위한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이 지역의 기호유교문화적 전통이 되살아나고 영남유교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현대적 유교문화가 창출될 수 있는 터전이 대전에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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