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으로 인생역전 '법조계 성실맨'

▲ 김진섭 변호사
형제간에 추수한 짚단을 밤에 몰래 서로 옮겨다 놓으며, 형제애를 보여줬던 '의좋은 형제'는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런 '의좋은 형제'가 실존했고, 의좋은 형제의 무대적 배경이 예산이라는 것은 충청도에서도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좋은 형제들의 마음씨만큼 인심이 훌륭한 예산에 고향으로 둔 김진섭 변호사는 24년간 군에서 법무관으로 활동을 하며, 예산의 풋풋한 인심을 간직해 온 율사다.

어려운 가운데 형제간의 따뜻한 우애를 보여준 고장 출신답게 김 변호사는 과거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이를 잘 이겨내고 나름대로 목적과 의미가 있는 삶을 살아온 충청인이다.

예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서울과 대전 등 대도시로 유학을 가지 못한 김 변호사는 예산농고의 후신인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 토목과에 입학했다.

지난 78년 군법무관에 합격한 후 현재까지 걷고 있는 법률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과연 법률인이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인생의 방향으로 청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에 다니던 중 백승탁 전 충남도교육감의 일가이자 담당 교수였던 백주현 교수의 권유로 인해 법학도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백 교수는 김 변호사에게 서울에 있는 대학의 편입을 권유했고, 특히 법학을 전공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김 변호사를 설득시켰던 것이다.

결국 김 변호사는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 5학년 시절(당시는 5년제) 단국대 법대에 편입했고, 탄력을 받아 사법시험에 도전키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율사의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군법무관 3회째인 지난 78년 김 변호사는 어렵게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사법고시 등을 준비한 지 3년 만에 얻은 결과다.

당시 군법무관 시험은 5년마다 한번씩 있었기 때문에 경쟁률은 물론 경기고와 서울대 출신 등 알아주는 학교 출신들이 대거 지망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가 합격했을 당시에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 18명에 이를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했다. 합격한 후 한번은 경기고 출신이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냐"고 묻기에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 출신"이라고 했더니 "그런 학교도 있냐"고 농담을 건넸을 정도로 치열한 과정이었다고 김 변호사는 기억했다.

한 분야에서 20년 넘게 생활을 해 왔으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겠고, 얼마나 많은 추억담이 있을까.

김 변호사는 지난 89년 미국 육군법무관대학원에서 석사받은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미국 독립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완성한 대통령으로 유명한 제퍼슨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버지니아주에 있는 미국 육군법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것에 대해 김 변호사로서는 매우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비록 1년이라는 짧은 과정이었지만 그 짧은 기간 중에 많은 공부를 해야 했고, 그만큼의 공부를 하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김 변호사는 "당시에 언어 문제를 비롯해 많은 학습이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1년간의 생활은 나에게 석사학위를 가져다줌과 동시에 내 머리도 하얗게 만들어 놓았다"고 고생스럽지만 보람되었던 1년간의 미국 생활을 회고했다.

결국 미국에서의 1년간의 고생은 김 변호사를 한·미연합사 법무실장으로까지 오르게 하는 영광을 가져다 주었고, 지금도 대학원 시절 미국에서 친분을 쌓아온 외국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변호사로서 국제적인 감각까지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한가지 지난 83년 고등군법원 판사로 재직하고 있던 김 변호사에게 아주 골치 아픈 사건이 배정되었다.

1심에서 강간과 살인으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은 사건을 김 변호사가 주심으로 담당하게 되었는데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잡다한 증거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김 변호사는 판결에 앞서 형사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숙독하고, 결정적으로 강간과 살해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내세워 결국 무죄를 선고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그 피의자가 정말로 살해를 했을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증거가 불충분했고, 또한 갓 입대한 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고 판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자신만이 존경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김 변호사도 예외는 아닌데 그는 자신의 한 친구를 존경한다고 했다. 다름 아닌 예산 광시중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는 이복현 교사이다.

김 변호사가 예산에 가면 꼭 막걸리라도 한 잔한다는 절친한 관계인 이 교사는 예산의 대흥현 임존성 밑에 있던 옹주태실(옹주들의 태를 묻은 곳)을 발견해 보수를 하는 등 고향의 역사를 보전하고, 이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것이 정말로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고 한다.?
?김진섭 변호사는…
▲1947년 예산 출생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 ▲단국대 법학과 및 석·박사 ▲1978년 제3회 군법무관 임용고시 합격 ▲1979년 사법연수원 법무3기 수료 ▲1983년 육군 고등군사법원 군판사 ▲1985년 법무연수원 수료 ▲미국 육군법무관대학원 수료 ▲1990년 한미연합사령부 법무실장 ▲1991년 육군 고등검찰본부 ▲1992년 합동참모본부 법무관실 ▲1993년 국방부 검찰관 ▲1995년 USPACOM Legal Conference 한국군 대표 ▲1995년 육군 제3사령부 법무참모 ▲2002년 변호사 개업(서울) ▲변호사김진섭법률사무소 변호사(현재)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