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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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21)

왕은 그렇게 번개치고 천둥이 울릴 때면, 부왕 성종이 어릴 적에 천둥치고 벼락이 떨어져서 같이 있던 어른들이 모두 혼절하고 내시 한 사람이 벼락에 맞아 즉사하는 현장에서도 놀라지 않아 조부 세조와 조모 정희왕후를 경탄케 하고 후에 형인 월산대군을 제치고 13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왕 자신은 어른이 되어서도 천둥소리만 나면 오금을 못 펴니 아버지의 그 초인적인 기량과 담대한 천성을 생각할 때 그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운 존재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이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사모하여, 살부혼모(殺父婚母)로 표현되는 에디푸스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아버지에 의해 불행한 죽음을 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요,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과 증오심이 무의식중에 작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하, 지금 밖에 우박이 내리고 있는 듯하오이다."

정무를 아뢰던 도승지 신수영이 왕의 질린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하였다.

"그런가 보오, 들에는 아직 거두어들이지 못한 농작물들이 많을 것인데 우박이 내리니 큰 일이오. 내일 회례연 베푸는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전하, 팔월이 가고 구월도 하순이온데 천둥과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리니 예사로운 재앙이 아니옵니다. 반드시 하늘이 견책하는 뜻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오니 회례연은 정지하시는 것이 옳을 듯 하옵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에 천둥치고 우박 내리는 재변이 어찌 옛날에는 없었을까 마는 하늘이 천둥이 거둘 달이 지났는데도 천둥치고 우박이 내리니 내일로 예정된 회례연이 비록 경사로 인한 것이지마는 이와 같은 하늘의 재이(災異)를 무릅쓰면서까지 굳이 거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정지하도록 하오. 대간이 하늘의 견책을 이유로 해서 과인이 경연에 나아가지 않는 것을 번번이 허물 삼아 간쟁을 벌이니 나도 진실로 수양하고 반성해야겠지만 아래에 있는 신하들도 근신해야 할 것이니 이 뜻을 의정부에 전지를 내리도록 하오."

"예."

"그리고 내일 궐내에서 회례연을 거행하지 못한 대신 며칠 후 일기가 고르게 되면 승평부부인 집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려 하니 내수사(內需司)로 하여금 미리 물자를 공급하게 하오."

왕은 결국 승평부부인 박씨를 즐겁게 해주고 한바탕 즐겁게 놀 궁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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