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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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23)

"승평부부인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는 데 그다지 큰 비용이 들지 않으니 회례연에 비길 것이 아니오. 나라의 경사가 있게 한 공로에 어찌 그만한 은사(恩賜)가 없어서 되겠소."

왕은 길게 변명하지 않고 궁중에서 베풀 회례연 대신 승평부부인 집에서 잔치를 베풀겠다고 고집하였다.

왕은 승평부부인 박씨 집에 가서 잔치하고 놀 일에 지레 마음이 들떠서 날마다 날씨가 좋아지기만 속으로 빌고 있었다.

그러나 가을 늦장마는 좀체로 얼른 걷힐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찬비가 구질구질 내리다가 오래 멎는 동안이 기껏 반나절이 고작이고 햇빛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비가 잠시 그친 동안에 왕은 경복궁에 거둥하였다.

경복궁 연생전(延生殿)에 왕의 할머니인 인수대비가 거처하고 있었다.

창덕궁에 거처하고 있는 왕은 경복궁을 지척에 두고도 장마를 핑계삼아 인수대비에게 문안 올리는 일을 게을리하던 참이었다.

고령인 인수대비는 자리보전을 하고 있었다.

왕이 문안을 올리고 연생전에 나와서 내시들을 거느리고 근정전(勤政殿) 쪽으로 걸어가는데 마침 공복 차림의 풍원위 임숭재가 첩지와 당의(唐衣)로 예장(禮裝)을 한 휘숙옹주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전하, 신 임숭재 승후 아뢰오."

"전하, 오랜만에 뵈옵니다. 그동안 옥체 강녕하오신지요."

내외가 함께 걸음을 멈추고 왕에게 절하고 문안하였다.

"오! 옹주 내외가 어인 일인고?"

왕은 반색을 하였다.

"대왕대비마마께 승후를 올리러 입궁하였사옵니다."

"글쎄, 그런 일이 아니고서 내외가 경복궁에 들어올 일이 없을 터이지. 나도 방금 할마마마께 승후를 하고 나오는 길이야."

"대왕대비마마 옥체 미령(靡寧)하시다고 들었사온데 어떠하오신지요?"

휘숙옹주가 왕을 쳐다보며 물었다.

"궂은 날씨 탓으로 삭신이 쑤시고 허리가 결린다고 하시는데 그게 다 노환(老患)인걸 어쩌겠나. 증손자가 세제에 책봉되는 경사를 보셨으니 원도 한도 없다고 하시지마는 무슨 예감이 들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지는 않더군."

왕은 거기서 말을 끊고 임숭재를 쳐다보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하였다.

"참, 내가 언젠가 풍원위한테 부탁한 일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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