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충남도 문화체육관광국장

때는 백제 무왕 13년(서기 612년)이었다. 사비성의 구드래 나루를 떠난 악사 미마지는 길고 험한 바닷길을 지나 일본의 나니와(難波) 나루터에 당도했다. 일본의 관리들은 그를 극진히 영접하고 사쿠라이라는 마을에 정착하도록 배려했다. 중국 오나라에서 춤과 음악을 배워온 미마지는 그곳에서 소년 제자들을 모아 백제 음악무용의 원형인 기악무(伎樂舞)를 가르쳤다. 문화적 미개지였던 일본에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뿌렸으니, 지금으로부터 꼭 1400년 전의 일이다.

기악과 탈춤, 재담과 놀이를 혼합한 종합예술 성격의 이 기악무는 일본 최대의 사찰로 손꼽히는 동대사의 낙성식 때 공연될 만큼 중요시됐다. 지금도 동대사와 국립박물관에서 당시 사용하던 탈을 국보로 지정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현재의 사쿠라이시(市)에 전수지인 토무대(土舞臺)가 보존돼 있다. 1970년대에 일찌감치 복원작업도 마친 일본인의 관심으로 볼 때, 그 가치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처럼 소중한 백제의 기악무지만, 정작 본 고장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백제기악전승보존회가 결성된 것이 겨우 2003년이다. 유적이나 문헌 자료가 부족하다보니 악기나 탈 복원도 최근에서야 활발해졌다. 다행인 것은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돼 백제 악기의 실체가 확인된 점이다. 이를 계기로 백제 5악기와 음원이 복원되었고 5악사의 복식도 재현됐다. 더욱 뜻 깊은 일은 지난 2010 세계대백제전에서 초연된 창작 마당극 ‘미마지’ 공연이다. 이로써 한류의 원조라 불리는 미마지는 국내외 관광객의 환호 속에 되살아났다.

1400년의 시공간을 건너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온 미마지가 올해에는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된다. 오는 9월 29일부터 10월 7일까지 열리는 제58회 백제문화제의 부주제가 ‘백제의 춤과 음악·미마지의 부활’로 설정돼, 기악무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탈 제작 공모전을 비롯해서 백제기악 탈 페스티벌, 탈춤 경연대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일본으로 건너간 기악무가 그들 고전 악무의 하나인 기가쿠(伎樂)로 정착된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아리랑이 중국의 문화재로 지정되고 심지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는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민족문화가 우리 자신이 관심을 멀리 한 사이, 타국의 점유가 되고 마는 사례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미마지 기악무의 세계화를 위해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의 땀과 정성으로 백제의 찬란한 문화가 오늘에 다시 꽃피고 있듯이 백제의 춤과 음악도 한반도를 넘어, 세계인의 예술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외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해야 하고 해외 공연도 자주 해야 하겠다.

충남도는 옛 소리를 되찾아 콘텐츠로 개발하고 이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 문화예술계는 물론 관계 전문가들도 함께 지혜를 보태주셨으면 한다. 그래서 백제 기악무와 미마지라는 이름이 세계 문화의 대명사가 되는데 힘을 모아주시기를 소망한다. 파리와 로마, 그리고 뉴욕의 거리에서 미마지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며, 다가오는 봄엔 우리 소리 공연을 자주 찾아가 보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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