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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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24)

"예, 전조(前朝=고려)의 근친혼(近親婚)과 근친간(近親姦) 풍습에 대해서 상고하여 아뢰라고 분부하신 적이 계셨습니다만…."

풍원위 임숭재는 옆에 서 있는 아내 휘숙옹주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면서 말하였다. 휘숙옹주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인 듯 낯을 붉히며 외면했다.

임금이 사랑한 미인의 몸에서 난 딸답게 요염한 얼굴에 담긴 수줍음이 교태처럼 요사스런 구석이 있었다.

왕은 그 휘숙옹주가 이복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듯 잠시 부신 듯 황홀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얼버무리듯 껄껄 웃었다.

"경은 어째서 나의 밀명을 함부로 누설하는가?"

왕은 자기를 시종하여 뒤따르고 있는 내시들을 의식한 것이었으나 그의 껄껄거리는 웃음이 말해 주듯이 꾸짖는 어투는 아니었다.

임숭재도 내시들은 왕의 호색(好色)에 얽힌 사생활의 비밀은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심결에 그런 말이 나와버린 것이었다.

"황공하오이다, 전하."

"아니야, 하하하. 대비전에 승후 올리고 돌아가는 길에 창덕궁에 잠시 내외와 같이 들렀다 가도록…."

"예, 알겠사옵니다."

풍원위 임숭재와 휘숙옹주 내외는 경복궁에서 인수대비에게 문안을 드린 후 창덕궁 선정전으로 왕을 만나러 갔다.

왕은 사석에서 오랜만에 누이 내외를 맞아 주효를 접대하며 즐겁게 담소하였다.

주효가 가득 오른 원반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은 그들 세 사람은 군신간이 아닌 가인(家人)으로서 화기애애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왕이 고려 왕실의 근친혼과 근친간 풍습을 상고해 보았느냐고 임숭재에게 물었다.

"예, 그때… 그러니까 어명을 받은 즉시 고려사(高麗史) 등을 구해서 상고하였사오나 그후 명하신 일을 잊으신 듯이 신을 다시 부르시지 않기로 발췌한 것을 간직한 채로 그냥 잊고 있었사옵니다."

"발췌한 것이 집에 있나?"

"예, 신이 기억나는 대로 아뢰오리까?"

"풍원위가 머리가 명석한 재주꾼이라는 것은 내가 알지. 하하하."

"하온데 고려조의 근친혼이라든지 근친간이라든지 상상 밖의 패속(悖俗)이 아주 난잡하여 어전에서 이야기하기가 매우 난처하오이다."

임숭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음흉한 웃음을 흘리면서 왕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휘숙옹주의 눈치를 더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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