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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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25)

술기운으로 발그레하게 얼굴이 달아오른 휘숙옹주는 이제는 수줍은 빛이 없이 오라비와 지아비의 묘한 화제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어전이라 난처하다고 하는 것은 변명일 게고 옹주와 합석한 자리라서 거북한 모양이지?"

"내외가 단둘이 있을 때는 못할 이야기가 없사오나 어전에서는 난처하오이다. 옹주마마, 먼저 귀가하시는 것이 어떠하오?"

"싫사옵니다. 동부인해서 모처럼 입궐하였는데 그런 섭섭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대감께서 저에게 이미 이야기하신 고려 때 국혼(國婚) 풍습은 그것이 근친혼이라는 것 말고는 외설스런 육담(肉談) 같은 것이 아닌데, 제가 같이 들어서 나쁠 것이 무엇입니까? 상감마마께서 오늘은 군신례가 아닌 가인례(家人禮)로 대하실 것이니 마음껏 마시고 무슨 이야기든지 거리낌 없이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술기운 탓이었을까. 경복궁에서 왕과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잠깐 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부끄럼을 타며 외면하던 휘숙옹주가 아니었다. 부부는 닮는다지만 음흉한 간물(奸物)로 소문난 임숭재와 그에 못지 않게 교활하고 요사스런 간물이라는 평이 나 있는 휘숙옹주는 어쩌면 천생연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맞아, 맞아! 옹주 말이 맞아! 오늘은 군신간으로 만난 것이 아니야. 오누이와 처남 매부가 합석한 것이지. 옹주 말마따나 육담 같은 것이 아니면 허물할 것이 있나. 자, 이 잔 받고 어서 이야기나 해 보아."

왕이 임숭재에게 잔을 건네주고 손수 술병을 기울여 술을 부어 주었다.

"전하, 이 잔 받으시고 만수무강하시옵소서."

휘숙옹주가 교태를 부리며 왕에게 잔을 올렸다.

"고려사 후비전(后妃傳)에 보오니 그 서문에 이르기를 태조(太祖)는 옛을 법(法)하여 풍속을 고침에 뜻을 두었으니 토착(土着)한 습속에 젖어서 아들을 딸에게 장가보내고 딸은 그 외가의 성(性)을 칭하게 하여 그 자손이 이것을 가전(家傳)의 법으로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애석한 일이다… 운운하고 있사옵니다."

임숭재는 잔을 받아놓고 이야기 허두를 꺼내는데 마치 책을 읽듯이 막히거나 머뭇거림이 없었다.

"고려 태조가 아들을 딸에게 장가보냈다니, 그럼 고려 왕실에서는 남매간에 혼인을 하였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이복자녀를 혼인시키는 것이 예사요, 딸의 성을 외가 성에 따르도록 한 것은 아마도 고려 초까지 모계사회(母系社會)의 유풍(遺風)이 남아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되옵니다. 지금 생각하면 패속 같지만 고려 왕실에서 공공연히 근친혼을 한 것은 그 당시의 토속으로 지금에 와서 왈가왈부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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