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4월 22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서 미술경작展(Art cultivation)]
노동·땀방울로 일궈낸 현대미술 … 캔버스엔 치열한 고뇌 흔적 가득

▲ 내달 7일부터 4월 22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술경작展’에 전시될 김동유, 노주용, 윤종석 작가의 작품.(왼쪽부터)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내달 7일부터 4월 22일까지 ‘미술경작(Art cultivation)’ 전시가 열린다.

어떻게 미술을 경작한다는 것일까? 경작이란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다. 농사는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한다. 여기서 ‘짓-’의 기본 의미는 대상의 자연스런 형상화이며 ‘만든-’의 기본 의미는 대상의 의도적인 형상화를 뜻한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 보면 농사는 이미 자연스런 형상화로서 오랫동안 생활처럼 진행되어온 일과이지만 처음에는 생존에 대한 치열한 투쟁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농사에는 자연과 식생의 수많은 변화에 대한 관찰과 노동의 노고가 들어있으며 이를 집적한 고도의 정보체계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착안했으며 미술의 포괄적인 범주에서 집적에 의한 제작 특성을 가진다. ‘미술경작전’은 집약적인 노고를 쌓아 만드는 수행과도 같은 작가의 창작행위와 이를 운용하는 작가정신을 지칭한다.

◆‘지독한 그리기’의 작가들

1980년대 이후 설치작품과 미디어아트가 활성화됐지만 현재 평면은 유효하게 살아남았다. 한쪽에서는 미디어물이 번쩍거리고, 또 한편에서는 키치와 입체가 복합적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풍경화와 아름다운 정물은 여전히 서정의 모서리를 맴돌며 한결같이 존재한다. 평면은 회화의 시작이자 통로이며 변함없이 미술행위의 기본 재료를 이루며, 평면의 표현은 회화의 피부로 관념적인 공간을 생성한다.

‘미술경작전’은 평면을 극한의 인고와 싸우며 정면으로 승부하는 이들, 마치 물감과 표면사이의 이랑을 유영하고 표면을 채워 일궈나가는 ‘지독한 그리기’의 작가들이 함께했다.

김동유 작가는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을 병치 혼합해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나 시대적으로 구현하던 정의의 올바름 속에 감추어진 이중성을 드러내며, 노주용 작가는 평범하게 스치는 숲의 언저리나 숲의 한켠을 포착해 바닥을 실루엣처럼 형성한 다음 가는 붓으로 여러차례 반복해 색채들이 전자기기의 회로처럼 정교하게 짜인 듯 보이게 했다.

민성식 작가의 풍경은 이상적이거나 환상에 의한 공간이다. 과감한 구성의 구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간은 조감법과 화면이 커다란 분할로 시야를 트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또 이번 전시에는 전통적 오리기를 적용한 작가들이 얇은 종이를 뚫고 세워 일으켜 전면과 이면을 통하는 기호적인 행위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 이민혁, 민성식 작가의 작품.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박계훈 작가는 1990년대 후반 삼베 천을 손바느질로 만들기 시작해 나무젓가락의 조각, 그리고 최근의 장지에 콩나물 대가리를 오리기까지 일관적이다. 근래의 종이오리기 ‘연약한 직립’ 작품은 언 땅을 뚫는 연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밀어 올리는 싹처럼 삶을 통한 시간의 증식됨을 표현한다. 오윤석 작가는 한자로 된 서체나 난초를 오려내고 한지의 얇음을 이용해 빛을 투과하거나 오려낸다.

마치 생명의 자람은 반복적이고 무생산적인 과정을 거치며 자라듯 시간을 비워낸 자리에 금강경의 서체가 탄생한다. 근래에는 얇은 종이에 따닥따닥 한지표면의 일부분을 드러냄과 동시에 나타나는 무중력적인 빈 공간을 즐긴다.

이외에도 박능생, 윤종석, 이민혁, 함명수, 허구영 작가 등이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순구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작가들은 다양한 한국미술의 흐름 속에 주목받고 있으며 이들은 역사적 인물이나 주변의 이미지를 신개념의 이미지로 바꾸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며 “일상의 새로운 해석과 의식의 전환을 추구, 노동집약적인 방법으로 현대미술의 한 장르를 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주미 기자 jju1011@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