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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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30)

"허허, 왕위계승이 그 정도로 어지러웠으면 고려 왕실의 혼속(婚俗)은 근친혼이 아니라 난혼(亂婚)이라고 해야 되겠군."

"그러하옵니다. 8대 이후는 모두 현종 임금의 자손들이 왕 노릇을 하였으니 우리 조선의 왕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가 하옵니다. 순수한 용종(龍種)을 보존키 위해서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고려의 역대 임금들과 종친 공주들이 숙질간과 남매간을 가리지 않고 근친혼과 근친간으로 맺어진 것이 얼기설기 얽힌 난마(亂麻)와 같아서 이루 다 아뢸 수가 없사옵니다. 너무 망측한 패속이옵니다."

"대감, 그렇지 않습니다."

휘숙옹주가 이의(異議)를 달았다.

"고려 왕실의 근친혼과 근친간을 두고 패속이라고 하시지마는 친척 관계를 가리지 않고 누이나 이모나 숙모나 고모를 막론하고 혼인을 한 것은 비단 고려뿐만이 아니라 신라와 중국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옵니다. 아무리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바뀌었다고 해도 임금에게는 이복누이거나 사촌누이거나 고모거나 숙모거나 모두 여인일 뿐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취중 실언(失言)이었을까. 맹랑하고 요사스런 방담(放談)이었다.

"언젠가 녹수가 임금에게는 어머니와 조모 외에는 모두 여인일 뿐이라고 하더니 옹주도 같은 생각이군. 매부 생각은 어떠한고?"

왕은 임숭재에게 물으며 슬그머니 휘숙옹주의 손을 잡았다.

임숭재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 술잔을 들어 외면한 채 천천히 마셨다.

왕의 취안에는 이복누이 휘숙옹주가 꺾고 싶은 한 송이 요화(妖花)같이 비치고 있었을까.

임숭재는 그때 비운 잔을 내던지듯 탁 소리나게 주안상 위에 내려놓으며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질 것처럼 휘우뚱거렸다.

"어머, 대감! 왜 왜 그러십니까? 만취하셨구려. 아이 이 일을 어쩐담."

휘숙옹주는 왕에게 잡힌 손을 얼른 뽑고 남편 임숭재를 부축하였다.

"옹주마마, 나 아직 정신이 멀쩡하오. 취하기는 누가 취하오. 어흠 험험…."

임숭재는 아직 만취한 것 같지 않은데 또 쓰러질 듯 게울 듯이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주정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전하, 이 양반이 두주(斗酒)를 불사(不辭)한다고 주량을 자랑하지만 실은 술이 약한 사람이옵니다. 어전에서 추태를 부리기 전에 함께 물러갈까 하옵니다."

휘숙옹주는 임숭재가 취중에 큰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고 겁이 난 표정으로 왕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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