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상의 회장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0년대였다. 도지사를 비롯한 각급 기관장을 임명한 데다 지금처럼 지방의원들도 없었던 시절이다.

중앙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일사불란하게 이행하기만 했던 때였다. 민간의 의사를 관에 전달할 수 있는 게 사회단체뿐이었으나 반공연맹이나 재향군인회 등도 관에서 예산을 타 썼으니 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민간의 의견을 관에 전달할 수 있는 게 상공회의소였다. 그래서 상의회장은 '민간지사' 소릴 들을 만큼 역할이 컸다.

70년대 3선을 하면서 9년 동안 상의를 이끈 사람이 김우현 초청약수 대표였다. 도지사가 부임하면 환영회도 열고, 떠나가는 기관장에게 전별주라도 대접하는 게 다 상의회장의 역할이었다. 경찰서장 출신으로 유도회장도 겸했던 김우현 회장은 체구는 작았지만 사교성도 좋아서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90년대 민권식 대성연탄 회장이 등장해서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다른 사교술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민 회장은 상의회장을 하다가 충청일보 사장까지 겸하게 되었다.

상의회장만으로도 대단한데 언론사 사장까지 겸했으니 위세를 짐작할만했다. 지금까지 가장 치열했던 상의회장 선거는 한현구 전 충북도의회 의장과 오세운 전 부의장 간의 대결이었다. 지역사회가 양분될 정도로 접전을 벌인 끝에 한현구 씨가 당선되었지만 오세운 씨가 이어받음으로써 한을 풀 수 있었다.

그다음에 등장한 게 이태호 현 회장이다. 4회에 걸쳐 무려 14년간 회장을 함으로써 전국에서도 드물게 장수기록을 세웠다. 2월 말 임기만료를 앞두고 차기 회장을 경선할 경우 경제계의 분열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추대형식을 주장하고 있다.

젠 한국 김성수 회장을 추대하기로 했으나 잦은 해외출장 등으로 여력이 없다며 고사하고 있다.

만약 김성수 회장이 선출되면 김종호·김성수 부자(父子)가 상의회장을 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문제는 현 이태호 회장이 김성수 회장을 고집하는 것은 14년 동안 장기집권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중학교 동창을 추대하는 것이라는 오해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지역사회를 위한 충심(忠心)라도 오해를 받고 있다면 정관에 따르는 게 원칙일 것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