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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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6)

서울의 복판 대사동에 있는 녹수의 집 주변은 헐리는 인가들로 시비와 소음과 황토 먼지에 뒤덮여 어수선하였다.

일개 후궁의 집을, 그것도 주인이 궁중에 있어 실제로 거주하지도 않는 집에 화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주위의 인가를 철거하는 처사는 일찍이 없었던 폭정이었다. 그러나 철거 보상비는 국고에서 나오고, 집주인인 녹수가 철거민들과 흥정을 해서 집값을 치러주는 것처럼 하여 철거민들을 설득하고 무마하였다.

노비 출신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아 부귀와 세력이 어느 재상에 못지 않게 된 녹수의 존재는 이제 아동주졸(兒童走卒)에까지 알려졌다. 길거리에 나와서 노는 조무래기들의 입에서 언제 누가 지어서 퍼뜨렸는지 모를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장녹수가 그랬다네

세상의 부모님네 아들 원치 말고 딸을 낳으시오.

민원(民怨)이 노래가 되어 퍼진 것이었다.

사헌부에서 상소문이 올라왔다.

<지금 장숙용의 사가(私家) 인근의 인가를 철거하는 일로 민원이 크게 일고 있사옵니다. 장숙용이 대궐 깊숙한 곳에 거처하니 사가에 나가 있을 리가 만무한데 이와 같이 민원을 사는 것은 여알(女謁)이 천하의 총명을 흐린 때문일 것이옵니다. 대궐을 내려다보는 인가를 철거함으로써 일어난 민원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후궁의 사가를 위해서도 또 인가를 철거하고 원성을 듣는 것은 성덕에 누가 되는 일이오니 정지하게 하소서. 또한 작(爵)과 상(賞)은 조정의 공기(公器)로서 세상을 격려하고, 둔한 사람을 연마시키는 중한 것이온데 근래에 관작을 주는 일이 거개가 대궐 안에서 나오고 또 적당한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재주를 시험하여 벼슬을 주는 것이 조종조의 법이온데 김효손은 천한 이속의 신분으로 군직(軍職)에 등용된 것도 과람한데 재주의 시험도 없이 동반(東班) 관직에 제수하시고 그 인물의 어짐과 어질지 못함은 전혀 논외(論外)로 하시니 선왕의 법을 따르는 도리에 어긋나옵니다. 인군은 나라 법 지키기를 금석(金石)과 같이 하여야 하는 것이온데 법을 무너뜨리는 실마리가 전하로부터 시작된다면 모두들 나라 법을 생각지 않고 앞으로 이현령비현령(耳縣鈴鼻縣鈴) 식으로 어지러이 고쳐서 편법을 쓰게 되어 국법질서를 바로잡을 수 없게 될 것이옵니다. 공장(工匠)이나 장사치의 아들이 관원 명부에 오를 수 없는 것은 이미 오래된 조종조의 법이옵니다. 최수여산이란 자는 그 조부 때부터 장사로써 업을 삼아 삼대째 전해 오니 장사치 중에서도 심한 자인데 전하의 특명으로 군직을 제배(除排)하게 되었으니 신 등이 깊은 사정은 모르오나 어찌 시정(市井)의 천한 무리가 전하의 조정의 명기(名器)를 더럽힐 수가 있으리까? 효손의 관직을 다시 갈으시고 수여산은 관직을 주지 마시기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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