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중심의 東아시아 질서 모색
'아사달·아사녀'의 슬픈 이야기는
신라까지 뻗친 백제 문화 말해줘

일본은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 들였으나 이 때문에 내분이 격화된다. 불교를 받아들이자는 친 백제세력의 소가(蘇我)와 이를 거부하는 모노노베(物部) 세력의 충돌이 그것이다.

급기야 일본에서 불교의 수용여부를 둘러싸고 내전이 일어나자 백제는 반대파를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같은 주장은 한국전통문화대학의 이도학 교수가 지난 10월 4일 있었던 제57회 백제문화제를 기념하여 '고대 동아시아의 불교와 왕권'을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나왔다.

결국 백제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불교를 받아들이자는 세력이 587년 내전에서 승리한다. 이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일본은 백제의 불교와 정치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도학 교수는 이와 같은 백제의 일본에 대한 '무력개입'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몇 가지 사료(史料)를 통해 제기하고 있는데 특히 '단종실록' 원년 6월 기유(己酉) 편에 나오는 기록이 눈길을 끈다.

이 기록은 백제의 임성태자(淋聖太子)를 자신들의 선조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오우지씨(大內氏) 일족이 그에 관한 기록을 얻기 위해 조선 조정에 요청한 공문이다.

'일본의 성덕태자는 불교를 높이고 공경하였으나. 반대세력이 군사를 일으켜 불법을 없애려고 하여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때 백제 국왕이 태자 임성(淋聖)에 명하여 그 반대세력을 진압케 했으니….’하는 부분을 중요한 사료로 제시한 것.

이도학 교수는 이 시기를 서기 580년대 백제 위덕왕 시대로 보고 있다. 위덕왕은 '왕은 곧 부처다'(王卽佛)라는 사상으로 불교를 진흥시켰고 그것을 일본에까지 확대하여 백제중심의 동아시아 질서체계로 구상했다.

사실 백제는 신라와의 동맹이 깨지기 전에는 경주에까지 불교문화에 진력하는 등 한반도의 불교 구심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21호로 지정된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하는 불국사 석가탑의 전설.

전설은 백제 사비성(지금 부여)에 사는 당대 최고의 석공 아사달이 신라의 경주 땅에서 김대성과 함께 석가탑을 창건하면서 시작된다.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는 남편이 보고 싶어 탑의 모습이 비치는 연못에 서서 밤낮으로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길 기다리다 정신을 잃은 나머지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다.

탑을 완성한 아사달이 앞산 바윗돌에 홀연히 떠오르는 아내의 미소 띤 모습을 보고 거기에 정신없이 아내의 얼굴을 새기기 시작했는데 작업을 끝내자 그 바위에 새긴 얼굴은 사랑하는 아내 아사녀가 아니라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부처님이었다.

이 애련한 전설에서 보듯 백제는 불교는 물론 문화, 예술의 강국이었고 그래서 신라는 물론 일본까지 그 위력을 펼쳤던 것이다.

어쨌든 백제문화제가 거듭될수록 백제의 위대성이 하나씩 하나씩 세상에 밝혀짐은 너무도 보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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