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가족에 새마을교육… 영부인을 현장 보내기도

▲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전도사로서 역할을 했던 당시의 기억을 되새기며 이야기하고 있다. 이덕희 기자withcrew@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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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기댈 언덕조차 없었던 정종택 전 장관. 고시의 꿈을 접고 내무부 임시직 말단에서 시작해 5부 장관과 3선 국회의원의 대망을 이룬 충북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 전 장관은 70년대 불었던 새마을 운동 전도사 역할을 하면서 국가 부흥에 앞장섰다. 사북탄광 사태, 사상 초유의 냉해, 우유파동 등 80년대 격동의 역사 속에도 정 전 장관이 있었다. 청주국제공항 개항의 주인공이기도 한 정 전 장관은 공군사관학교, 한국교원대 등을 유치하면서 남다른 고향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국회의원과 장관시절 발생한 중요한 사건들은 하나같이 정 전 장관에게 역경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현대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을 통해 한국 정치사를 4회에 걸쳐 되짚어본다.

◆ 들불처럼 번진 새마을운동

박정희 정권이 1970년 초부터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농촌에서 도시로 번져갔다. 정종택 전 장관은 1971년 7월 12일 대통령 정무비서관 및 새마을담당비서관으로 발탁돼 3년 4개월 동안 새마을운동을 전담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내무부에 있던 정 전 장관을 청와대로 불렀고, 그를 통해 오랫동안 자신이 구상했던 새마을운동을 실천에 옮겼다. 박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은 민족중흥이 목표였다.

새마을운동을 위해 청와대에 테스크포스팀이 꾸려졌고, 엘리트 구성원 발탁에 들어갔다. 당시 각 부처에서 차출된 엘리트는 송언종 서기관(내무차관, 전남지사, 체신부장관 역임), 이원종 사무관(서울시장, 서원대 총장, 충북도지사 역임), 한호선 농협과장(농협중앙회장, 국회의원 역임), 유태영 건국대 교수 등이었다.

새마을운동은 국정 제1과제였고, 모든 부처에 새마을 정신(근면, 자조, 협동)을 불어넣는 일부터 시작됐다. 정 전 장관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지도층의 새마을 교육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위해 먼저 고급공무원(1·2급)부터 수원 새마을연수원으로 1주일 동안 차출해 합숙시키면서, 새마을 복으로 갈아입히고 스파르타식 교육을 강행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결재를 얻어 내각에 시달하니 공직사회가 동요했고, 스파르타식 교육에 대한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 정도 반발을 예상했던 정 전 장관은 당초 계획대로 일을 추진했다. 그런데 총무처에서 작성된 교육대상에는 이른 바 권력기관인 청와대, 총리실, 감사원, 검찰, 경찰, 정보부 등은 모두 빠졌다.

정 전 장관은 "청와대에서 새마을 담당인 내가 먼저 입소할 테니 모든 권력기관에 청와대 특명이라고 통보할 것을 총무처 인사국장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장·차관까지 모든 공직자들이 예외 없이 교육에 참여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교육은 합숙교육, 생활교육, 성공사례 발표 등으로 진행됐고, 초기의 공직사회가 동요했던 것과는 달리 호응이 컸다. 그렇게 해서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초부터 농촌지역에서 도시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 양지회·대통령가족의 새마을 교육

정 전 장관은 새마을운동이 확산되는 시점에 영부인(육영수 여사)에게 새마을운동의 지도층 솔선수범 필요성을 설명하고 양지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새마을교육을 시킬 것을 요청했다. 양지회는 각 부처 장·차관급 및 실·국장 부인모임이다. 정 전 장관의 제안에 영부인이 양지회 총무를 맡고 있던 윤주영 문화공보부장관 부인인 권 박사(의사)에게 지시, 200여명의 회원이 남산 어린이회관 무지개극장에서 교육을 받았다.?

▲ 새마을 운동 일환인 산림녹화 사업에 참여.

정 전 장관은 "영부인이 참석한 가운데 양지회 회원 등을 대상으로 내가 직접 강의를 했는데 영부인이 '새마을운동에 미치신 비서관'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며 "그날 오후 박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해서 저녁에 우리 가족도 교육을 시키라고 해서 박 대통령, 영부인, 근혜양, 근영 양, 지만 군 등 대통령 일가족 5명에게 2시간이 넘도록 새마을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영부인을 새마을 현장으로 내보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옛날 왕은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며 왕의 부덕을 하느님께 빌었고, 왕비도 친잠(누에에 뽕을 주는)행사를 했다"며 농촌 새마을운동 참여를 권유했다. 이런 정 전 장관의 권유가 받아들여져 1972년 건국 이후 최초로 영부인이 참석하는 뽕 따기 행사가 경기도 가평에서 열렸다. 제2회 대회는 청원군 강내면 경부고속도로 서울 기점 117㎞지점 동쪽 벌판에서 행사를 치렀다. 이를 기념하기위해 국고지원을 받아 잠사박물관이 건립됐다.

◆ 새마을 풀(pool) 예산

박 대통령은 1970년 초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큰 차이 없이 당선됐다. 취임 후 박 대통령은 깨끗한 정치를 표방했다. 이후락 비서실장을 경질시키고 정치자금도 일체 모금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새마을운동이 큰 타격을 입을 상황이었다. 새마을운동 열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새마을 지도자에게 격려금을 지급해 사기를 북돋우는 것이 필수적인데 최소한의 예산 지원도 안 되고 있었다.

정 전 장관은 "청와대에 새마을 예산은 없고, 자금 없이는 새마을운동을 더 이상 밀어붙이기가 어려웠다"며 "새마을운동을 활기차게 전개할 수 없게 됐다는 생각이 들자 오기가 생기면서 사즉필생의 신념으로 기업들로부터 새마을 성금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말썽이 나면 사표를 내면 되지 않겠는가? 그 대신 1원이라도 부정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정 전 장관은 그런 뜻을 기업인들에게 전하고, 직접 청와대 수석비서관, 비서실장, 대통령 내외분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성금기부자에게는 영수증을 보내 법인세, 소득세에서 손비 처리하도록 했다.

새마을성금이 속속 답지하는 가운데 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에게 새마을 예산 확보를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정 전 장관의 새마을 예산 확보에 난색을 보였지만, 정 전 장관은 대통령의 의중은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생각하고 일을 벌였다. 정 전 장관을 부총리에게 그런 상황을 설명한 후 경제기획원 이재설 차관에게 새마을 예산 재원 200억 원(현재의 3~4조 규모)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차관은 난색을 보였고, 예산국장에게 떠넘겼지만 여전히 난항이었다. 결국 설득 끝에 100억 원으로 하기로 하고, 나머지 100억 원은 각 부처 장관에게 떼를 써서 각 부 특별교부금이나 보조금에서 보충하기로 타협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 정종택 전 장관이 농촌 새마을 운동 확산을 위해 농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 새마을 풀(pool) 에피소드

어렵사리 새마을 풀 예산이 세워졌다. 당시 박 대통령이 정 전 장관의 예산 필요성에 적극 나서지는 않았지만 내심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새마을 예산과 얽힌 에피소드가 많았다. 한번은 정 전 장관이 남덕우 재무부장관과 김보현 농수산장관에게 요새 은행 차장급만 돼도 골프장에 출입하는데 은행, 농협 임원들의 판공비, 정보비를 아껴 새마을 성금으로 유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얼마후 전국 농협 임직원들의 봉급에서 새마을 성금을 재해성금을 내듯 강제로 공제했다. 정 전 장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즉시 농수산부장관과 농협중앙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지만 농협직원들이 불평불만을 하면 순수한 새마을운동의 저해요인이 될까 두렵다'며 정중히 강제모금 철회를 요청했고, 곧바로 일체의 모금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양탁식 서울시장이 강감찬 장군 사당을 성역화 하는데 2억 5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해서 내무부 교부세에서 새마을 예산을 빼앗아갔다. 양 시장은 그런 사실을 정 전 장관 사무실에서 자랑하자 전 정 장관이 발끈했다. 정 전 장관은 "악질 원흉 소리 들어가며 각 부처에서 예산을 구걸해 새마을운동에 불을 붙이는 사람 따로 있다. 서울시는 주민세가 신설돼 많은 재원이 추가로 들어오는데도 새마을운동에 예산을 보태주는 못할망정 그 많은 돈을 빼앗아 갈수 있는가? 내년 서울시 예산에서 그 열 배가량을 청와대에서 묶겠다고 했는데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그 후 대통령 결재를 받아 서울시 예산 중 20억 원(현 3000억 가량)을 묶었다"고 회고했다. 서울시가 발칵 뒤집혔고, 양 시장의 요청으로 정 전 장관이 서울시 간부회의에서 자초지정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결국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까지 미움을 사게 된 것이다.

▲ 공장 새마을 운동 촉진을 위해 정 전 장관이 기업현장을 방문.

15년 후 노태우 대통령 시절 고건 시장이 관선시장으로 근무하면서 새마을 풀 예산이 사고가 났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이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삼았다. 서울시 새마을 풀 예산 20억 원을 대통령 선거에 악용하는 예산으로 오해한 것이다. 고 시장이 정 전 장관에게 도움을 청했고, 정 전 장관은 국회 행정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여야 위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했다. 정 전 장관은 "고건 시장은 내용을 정확히 몰랐고, 내가 나서 상임위 소속 의원들을 설득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모두들 서울시 새마을 풀 예산을 이해해주었다"고 말했다.

◆ 언론계 간부도 새마을 교육

사회 각층으로 새마을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인의 참여가 중요했다. 하지만 언론계 간부들까지 새마을 교육에 참여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였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기회가 왔다. 당시 오전식 기자협회 회장(경향신문 소속)이 정 전 장관에게 서울 구파발에 건립중인 기자촌이 그린벨트에 묶여 많은 기자들이 큰 손해를 입고 있다며 구제를 요청했다.?

서울시장과 상의했으나 당시 그린벨트 관리가 엄격하고 대통령이 신경을 쓰고 있는 사안이라 서울시 담당이 청와대에서 해결해오라고 귀 뜸한 것이다.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기자들이 박봉에 내 집 하나 마련해 보겠다고 주택단지를 조성했는데, 그린벨트에 편입된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오 기자협회장에게 한 가지 제의를 했다.

정 전 장관은 "제가 직을 걸고 대통령에게 구제 건의를 드릴 테니, 구제가 되면 언론인 모두에게 새마을 교육을 시킬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연히 기자협회장은 들어줄 수 없는 제안이라고 거부했다. 그래서 교육주최를 신문인협회와 민방협회가 하는 모양을 갖춰 하기로 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받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정 전 장관은 "새마을 교육은 정치와 무관한 사회개혁 운동이기에 모양새는 상관없었다"며 "언론인에게 새마을 교육을 시키는 것도 단지 새마을운동을 지도층 인사에게 시킴으로 써 파급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 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치색이 배제된 언론인 대상 새마을교육이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언론인 교육이 시작된 후 윤주영 문공부장관이 "기자들이 청와대에서 언론인을 길들이기 위해 새마을 교육을 시킨다고 반대가 심하니 중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에서 결론 끝에 춘천에서 하던 교육을 문공부 회의실로 옮겼다. 기간도 2박3일에서 1일로 대체하고 3박 4일 또는 2박 3일 동안 전국 새마을 현장을 시찰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언론인의 새마을 교육의 효과는 기자들의 시각을 바꾸는 효과가 있었고, 각계각층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대전 출신 공화당 원내총무였던 김용태 의원에게 '그 거대한 새마을운동을 정종택 비서관 혼자서 이끌고 나간다고 말씀하실 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며 "사즉필생(死則必生)의 신념으로 동서남북으로 새벽부터 뛰었던 피로가 일시에 가시는 듯했다"고 회고했다.<계속>

글=엄경철 기자eomk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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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1935년 2월 20일 생
▲충북 청원군 오창면 여천리
▲학력 : 청주고, 서울대 행정과, 청주대 명예행정학 박사, 인제대 명예이학박사(환경분야)
▲경력 : 광혜원 중·고등학교 교사, 내무부 토목국 및 지방국 근무(임시직 촉탁), 내무부 교부세 계장, 서울대학교법대동창회 사무총장, 부회장 및 낙산장학회이사장 역임, 내무부재정과장, 대통령정무비서관 겸 새마을담당비서관,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제18대 충북도지사, 제8대 노동청장, 제33대·제34대 농산부장관, 초대 정무1장관, 서울대학교총동창회 부회장, 제11대·제12대·제13대 국회의원, 제12대·제13대 국회JC출신 의원동우회 회장, 제9대 정무제1장관, 한·이란 의원친선협회장, 환경부장관, 충청대학 총장, 제7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현 고문),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명예회장, 한국지방대학총학장협의회 공동대표, 제10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 대한적십사자 중앙위원, 목우회 회장, 충청향우회중앙회 총재(현 명예총재)
▲저서 : 새마을 운동과 지도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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