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한이 만난 사람]‘감자박사’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씨감자 샘플들고 北 다녀와 인류 식량문제 해결할 것
직위 오를수록 연구 안하면 선진국 따라 잡기 어려워…
임기 3년간 무얼할까 고민 활기차고 &

▲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은 “현재 과학기술계가 놓여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과학기술이 우리나라를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올릴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prime@cctoday.co.kr

일하는 손끝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질문마다 시원시원한 답이 돌아왔다. 정치권과 과학계에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스로 당당하니 거리낄게 없을 것이다. 정혁(鄭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방에 들어서자 탁자 위에 씨감자가 널려 있었다. 그는 인공씨감자 대량생산에 성공한 감자박사다. 감자를 보는 순간 그야말로 감(感)이 왔다고 한다. 평생을 같이 걸어야 할 운명적 만남으로.

그는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테니스는 수준급이라고 한다. "스포츠는 요령이 안통하고 정직합니다. 이기려면 부단한 노력과 기량을 쌓아야 하지요. 최선을 다한 뒤 승패에 깨끗이 승복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연구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으르거나 요령을 피우는 사람은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낼 수 없지요."

과학자는 연구가 생명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새벽 5시에 연구실에 나와 실험도구와 씨름한다. 정년퇴직 전날까지 이렇게 벤치에 앉아 연구할 거라고 했다. 다른 연구원들이 아무래도 원장의 눈치를 볼 것 같다고 하자 "내가 5시에 나온다고 그들이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이다. 다만 각자의 개성대로 살되 연구에는 철저해야 한다. 연구를 하는지 안하는지는 척 보면 안다."고 힘주어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직급 직위 나이에 관계없이 연구에 몰두합니다. 손자뻘 되는 학생과 교수가 함께 연구하지요. 이게 바로 경쟁력입니다. 우리는 직위가 올라가거나 나이가 들면 실험실에 있지 않으려고 해요. 이렇게 해서는 선진국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전임 원장의 돌연 사태로 갑자기 취임을 하게 됐다. 취임 소감이 아무래도 남다를 것 같다.

"어깨가 상당히 무겁다. 연구소 창설 멤버여서 그런지 내가 생명연 사정을 잘 알 것이라는 의견이 반영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생명연이 처한 문제나 연구원들의 심정을 잘 헤아려줄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3년 임기지만, 또 내가 3년 동안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서도 무리한 목표를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긴 안목에서 볼 것이다. 과거부터 이어진 것이 지금도 진행되듯 나 역시 훗날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좋은 판을 깔아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에게 생명연은 좀 생소하다. 생명연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생명연은 국민이 건강하게 잘 먹고, 깨끗한 환경에서 병 없이 잘 사는 웰빙에 관련된 모든 연구를 다 하는 곳이다. 삶의 행복이 모두 여기에서 나오지 않는가. 보건의료와 농업바이오 등 생명연과 관련된 연구가 국민들의 웰빙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취임 후 연구원 분위기가 많이 변할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생명연에서 20년 동안 감자 연구와 사업단 살림 등을 하면서 느꼈던 점을 그대로 살려 생명연 전체를 활기차게 만들고 싶다. 연구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와 같은 정신노동은 시킨 사람도 피곤하지만 지시를 받는 사람은 더욱 피곤하다. 때문에 스스로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통해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풍토를 생명연에 조성하고 싶다. 실험실 고참 연구원들이 솔선수범해서 독려하며 연구하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생명연, 나아가 출연연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헤쳐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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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출근해 연구에 몰두한다고 들었다. 직원들이 좀 불편해하지는 않는가.

"처음에도 지금도 '피곤하겠다'는 말을 듣긴 한다(웃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나를 따라하거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한다. 연구원의 본분은 연구하는 일이다. '일하는 손끝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가 철칙이다. 지휘고하 남녀노소 불문하고 직접 실험실에서 가장 열심히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많은 생명연을 만들고 싶다. 그러면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난제들이 하나씩 자동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안 되면 조직개편이건 새로운 연구단지를 만들건 아무 소용없다."

-테니스를 비롯해 만능 스포츠맨이라는데 운동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과학자가 안됐다면 아마 운동선수가 됐을 것이다. 테니스는 대학을 다닐 때 위장병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시작했다. 해보니 짧은 시간에 운동효과도 좋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또 체력단련과 아울러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승패에 깨끗이 승복하는 스포츠정신도 멋있게 느껴졌다. 운동은 요령이 안통하고 노력에 따라 결과를 가질 수 있는 점에서 연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연구에 임함에 있어 공정성이나 객관성이 충족된다면 자신의 노력과 연구 결과를 되돌아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취임 후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는데.

"평가시스템은 어느 나라나 완벽할 수 없다. 연구 분야마다 속성이 다르고 관련 논문도 천차만별이다. 내가 구상하는 평가방법 개선은 기존 것을 더 전문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강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핵심은 평가자들의 최소 3분의 2는 관련 전문가로 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해 무작위로 평가위원 선정하면 전문적인 것을 알아듣기 어렵다. 방식은 객관적인지 몰라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전문성에서 좋고 나쁜 것이 평가되면 객관성과 공정성은 저절로 따라온다. 이를 무시하면 같이 무너진다. 때문에 전문성을 인정하면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살리면 평가시스템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감자박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씨감자 개발에도 성공했는데, 감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원장실의 책상위에는 품종별로 다양한 씨감자가 가득 놓여 있었다.)

"나도 감자도 생긴 것부터 울퉁불퉁하게 생겼다(웃음). 씨감자는 물류비용은 물론 파종과 재배에도 많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감자는 세계적인 주작물이다. 인류가 처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영향이 큰 작물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생명연이 개발한 씨감자가 퍼져나가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퍼지길 바란다. 특히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식량 생산국이자 소요국이다. 중국만 극복한다면 감자로 인한 녹색혁명도 가능하다고 본다. 또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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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남다르고 특히 씨감자 생산을 통한 장애인 복지를 구상하고 있다는데.

"씨감자 생산은 주로 앉아서 하는 수공업 형태다. 그래서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좋은 직장이 될 것이다. 또한 종자를 생산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식량 증산에 일조한다는 자부심 있는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감자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자선사업을 펼친다면 사회를 위해 보다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도 여러 차례 다녀 온 걸로 알고 있다. 감자 때문인가.

"과거 자생식물사업단장 시설 북한에 식량분야 교류와 식물분류 등을 위해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다. 씨감자 샘플도 북한에 수차례 전달했다. 북한이 관심을 갖고 투자해 씨감자 공장을 지으면 식량 문제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실천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식량부족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남다른데 해결 방안은.

"일단 세계적인 식량 위기는 조만간 올 수밖에 없다고 예측한다. 특히 중국과 인도의 경제발전이 현재처럼 이어진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경제성장 속도와 정비례하는 게 육류소비다. 그런데 육류를 키우기 위해 투입되는 작물 사료는 인간이 직접 먹을 때보다도 10배가 더 투입돼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사료용 콩을 연간 2000만t이나 수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20%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육류를 먹음으로 인해 현대 성인병도 증가한다. 지금처럼 경제성장이 진행되면 육류소비를 따라가기 위해 한정된 곡류생산량이 다 소진될 것이다. 이 수요를 해결하는 대책 중 하나가 생명연의 씨감자가 될 수 있다."

-최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등 과학계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여기에 맞춰 출연연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분위기에 대해 어떤 분들은 절호의 기회라고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위기라고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항상 위기와 기회가 상존한다. 당연히 과학벨트의 기초과학연구원과 출연연 사람들이 깊숙이 연계해서 더 발전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원과 출연연은 물론 대학과 산업계까지 포함하는 큰 네 개의 카테고리에서 출연연이 다른 섹터와 차별할 수 있는 연구테마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연구원들이 외지로 빠져 나가고 있다. 출연연이 키운 과학자들이 자리를 옮기면 출연연이 공동화될 거란 우려가 있다.

"연구원들의 자리 이동은 출연연이 생긴 이래 늘 있었던 일이며, 원칙적으로 이를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출연연에서 실력을 배양한 인재들이 다른 분야로 퍼져 나가는 인력 양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출연연은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사관학교 역할도 하는 것이다. 생명연도 바이오 생명공학 분야에서 많은 우수 인력을 배출했다. 그러나 출연연을 떠나는 이유가 대학이나 다른 연구기관보다 열악한 연구 환경 때문이라면 이를 개선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과학계 발전을 위해 연구원들이나 정책기관에 고언을 한다면.

"현재 과학기술계가 놓여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다. 박사과정 당시 품었던 연구정신을 교수가 됐던 연구원이 됐던 평생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야 과학기술이 우리나라를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올릴 수 있다. 그래야 국민들도 자신들이 낸 세금을 과학기술계의 연구 자금으로 줄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치권 역시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연구를 지원하는 데 동의할 것이다. 연구원이 국민이나 정치권과 서로간의 신뢰가 깨지는 근본 원인은 연구원들이 실험실을 일찍 떠나는 조로현상 때문일 수 있다."

-은퇴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치열하게 열심히 하려고 바동바동했다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연구원으로서 마지막 은퇴하는 전날까지 손에 물을 묻히며 일하다가 조용히 물러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논설실장>

정리=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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