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논설위원

오랜 기간 불모지였던 토론이 우리 사회에 그나마 실뿌리를 내린 데는 매스컴의 힘이 컸다. 주로 TV나 일부 신문지상에서 토론 프로그램과 기사를 취급하면서 우리는 토론과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아, 저게 토론이구나' 하는 경험을 늘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TV화면에서 보아 온 토론의 실상은 아직 한참 멀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나름대로 골라 섭외한 출연자들은 시종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적어 오거나 구상한 내용을 풀어내기에만 급급하다. 시간이 경과하여 스스로의 논리가 설득력을 잃어버린다거나 반응이 시원치 않고 또는 뜻밖의 공세에 봉착하면 돌연 리듬을 잃고 상대방의 말을 끊거나 야릇한 비웃음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한다. 대체로 대학교수, 국회의원, 공직자, 시민사회단체 임원, 그리고 이러저러한 전문가들이 등장하지만 시청자에게 설득과 감동을 주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자기 논리조차 확신이 안 서는 마당에 다른 사람을 설복하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인지 모른다.

토론의 기본은 끈기 있게 상대의 말을 경청한 뒤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데 있다. 설득의 결과 의견합치가 어려울 경우 건설적인 제3의 대안을 도출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의견접근과 타협을 지향하는 열린 자세가 없는 토론은 항상 원점을 맴돌게 되고 결과적으로 별 소득 없는 불모의 논쟁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토론의 기초를 이루는 대화도 그렇다. 사회 도처에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통한 관계 개선, 오해 불식, 사태 수습을 지향한다지만 그 역시 일방적인 주장 강요나 평행선을 달리는 '제로 섬' 입장 고수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가령 스톱(stop), 룩(look) 그리고 리슨(listen)이라는 대화의 기본매너 세 가지만 지켜져도 그 대화는 성공한다. 말하기 전에 한 박자 침을 삼키며 발언내용을 다시 한번 자기검열하고 상대방을 친근하게 바라보면서 끈기 있게 들어주는 대화매너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다. 충동과 격앙된 감정으로 일단 무턱대고 말을 내뱉는 동시에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며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는 행위는 대화나 토론의 최대 걸림돌이다.

요즈음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토론이 백가쟁명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이미 탄핵안 국회통과라는 고비를 넘은 뒤여서 토론의 의미와 효과는 반감된다. 시간이 촉박해서였는지, 당시 상황이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주제를 다룰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던가 혹은 다른 연유가 있었는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통과에 관련한 사전 토론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발 빠르게 움직이던 숱한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침묵을 지켰다. 특히 유럽에서 온 언론인들은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초고속 국회의결만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들이었다. 지루하리만치 거듭 따지고 논의하고 그래도 어려우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는 그들의 토론문화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을 것이다.???

세련되고 충만해야 할 소프트웨어인 삶과 인간관계의 기술, 특히 의사소통의 기본과정인 대화와 토론은 그 발전이 유난히 더디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각 매스컴에서 봇물을 이루는 토론을 보면서 시기 선택, 능력, 유연성과 설득기법, 그리고 그 자리에 나선 취지와 목적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씁쓸하게 확인한다. 사회 곳곳에서 대화를 외치면서도 혼자만의 부르짖음에 그치고, 토론을 벌인다지만 굳건한 방음장벽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공허한 말의 성찬은 언제쯤 개선의 기미를 보일까.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