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상공회의소(4) 회관 매입

"대전상공회의소가 대전의 생성기부터 도시의 발전을 주도해 왔지만, 정작 독자적인 회관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은 홍광표(작고) 7대 회장 취임 이후입니다."

▲ 대전상공회의소 회관 마련의 증언을 해준 신가현 전 대전상의 상근부회장.
신가현 전 대전상의 상근부회장의 회고처럼 대전상의는 40년간 '더부살이'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1932년 6월 출범한 대전상의는 창립 당시부터 개인 소유의 사무실을 전전하는 '차가(借家)살이'를 계속하다 1937년 1월 말 조선식산은행에서 1만원을 빌려 지금의 은행동 삼성화재 자리 241평의 토지를 매입했다. 대전상의는 이를 충남도에 무상 대여하고 충남도와 충남산업장려관(산업전시관)을 짓기로 합의, 상공인들의 기부를 이끌어 내 건축비의 80%를 지원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연건평 702.5평의 3층 콘크리트 건물에서 대전상의는 1층 19.5평과 2층 29.6평 등 총 49.1평만을 무상으로 차용하는 데 그쳤다.

비록 불리한 조건이긴 했지만, 대전상의는 이로써 영구히 사무실을 확보한 것으로 믿었다.

"지역 상공인들의 적극적인 기부와 충남도의 협조로 1938년에 건물을 완공했지요. 그런데 건물의 명의가 충남도지사로 돼 있었던 게 문제가 된 겁니다."

▲ 1972년 당시 충남도상공장려관을 매입하여 대대적 개보수공사를 할때의 대전상의 전경.
충남도산업장려관의 건물주인 충남도는 1942년 읍에서 부로 승격된 대전부에 부청사로 이 건물을 내줌으로써 대전상의는 건물 건너편 구(舊)대전지방법원 청사(현 갤러리아백화점 동백점 자리) 건물로 다시 이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 1972년 당시 충남도상공장려관을 매입하여 매입대금을 전액사재로 내놓은 7대 홍광표 회장.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시청사로 굳어 버린 충남도산업장려관 1층 구(舊)대전상의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그때부터 대전시가 새 청사를 신축해 이전한 1960년 이후까지 계속 옹색한 처지를 감내해야 했다.

"그렇다고 상의가 '더부살이' 신세를 면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1960년 대전시청 신축을 기화로 대전상의는 제3대 회장으로 피선된 문갑동 회장을 중심으로 회관 확보를 위해 의원들의 성금 445만원을 적립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지요."

그런데 이번엔 충남도산업장려관 자리에 대전전신전화국을 신축한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이에 따라 건물 부지가 체신부에 매각되었고, 대전상의도 소유 부지 중 42평을 체신부에 매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체신부가 돌연 계획을 변경, 대전전신전화국 신축지를 다른 곳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충남도산업장려관 부지는 199평으로 감소한 대전상의 소유 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유지로 변경됐다. 이 때문에 대전상의는 소유 부지 42평만 잃어버린 꼴이 됐다.

그후 대전상의는 충남도산업장려관에 홀로 남아 있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건물 전체를 상의 회관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것을 충남도에 건의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후 시청이 비운 자리에 대전지방원호청(보훈청)이 입주함으로써 상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대전상의는 회관 신축을 위해 소유 부지 199평을 다른 공유지와 교환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63년 대전지방원호청이 이전해 가고 대신 입주한 충남지방병무청과 2층 사무실을 동·서로 분리 사용하게 되면서 대전상의는 19.5평의 비좁은 사무실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1층에는 여전히 충남도상공장려관(구 산업장려관)이, 3층에는 청소년회관(영화상영관)이 자리해 궁색한 처지는 여전했다.

특히 상의가 새 회관 건립의 유일한 자원으로 간주하고 있던 소유 부지가 1964년 1월 대전시의 토지구획정리로 다시 153.1평으로 줄어들어 낭패를 보게 됐다. 그나마 다행스런운 것은 충남지방병무청이 새 청사를 마련해 이주하면서 대전상의가 건물 2층 전체를 모두 사무실로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에 상의는 문갑동 회장 200만원 등 의원성금 450만원을 모아 즉시 개조공사를 단행해 복도 서편에 중·소회의실을, 동편에 회장실과 사무국장실, 각 과 사무실을 마련, 아쉬운 대로 회의소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

대전상의가 40년간의 숙원이던 자가(自家) 회관을 소유하게 된 것은 1972년 9월의 일이었다.

"1970년 7월 제7대 총회가 구성되자 회장으로 선출된 홍광표 대전주정공업㈜ 사장이 임기 중에 상의회관을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공약을 했어요. 그리고 그 약속은 그대로 지켜졌지요."

홍 회장의 취임과 함께 대전상의는 회관 신축과 충남도상공장려관 건물 매입 중 양자 택일을 검토하는 등 상의의 자가회관 마련을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으며, 수차례의 추진위원회를 거쳐 충남도로부터 건물을 불하받는 것이 용이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후 상의는 충남도와 불하에 관한 협의를 계속하고, 당시 대전 출신 국회운영위원장 김용태 의원을 비롯한 서울과 지방의 각급 기관장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냈다.

결국 1972년 9월 1일 충남도가 담당하던 상공장려관의 업무와 운영을 상의가 맡아 운영한다는 조건 아래 건물의 '불하매수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매수에는 1760만원이라는 거액이 소요됐던 겁니다. 국유재산법상 일시 납입시 30%의 감면 조항이 있었지만, 상의 재정으로는 도저히 불하대금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홍 회장이 직접 나서게 됐지요."

홍 회장은 30%를 공제한 매입대금 1232만원을 전액 사재로 충당해 청사를 불하받는 데 아무런 차질이 없도록 조치했다.

상공장려관 건물의 불하를 위해 충남도와 교섭한 지 만 2년 만에 매수를 완료한 대전상의는 이로써 40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됐다. 이는 전적으로 홍 회장의 굳은 의지의 결정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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