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尙武정신을 생각한다

▲ 박익순 전쟁기념관장
1784년 그 옛날 화산 폭발로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폼베이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을 때 조사단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흘러내리고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을 상황에서 최후까지 자기 위치를 이탈하지 않고 서 있는 초병이 발굴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폼베이의 초병으로부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대 제국 로마의 전설은 우연히 이룩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3차 중동전쟁 이후 한 여행자가 텔아비브 시청의 정문에 서 있던 한 수위에게 국가관을 물었을 때 그는 "나의 국가관은 죽을 때까지 조국 이스라엘을 지키는 기관총 사수가 되는 것"이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1950년 6·25 전쟁 초기 맥아더 장군을 감복시킨 한 부사관의 일화는 더욱 생생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한강 방어선을 지키는 부사관에게 "귀관은 언제까지 이곳을 지킬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명령이 있을 때까지, 명령이 없다면 죽을 때까지"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국가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흥국과 망국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 국가의 존속과 번영은 자기 나라를 지킬 의지의 강약에 좌우되었음을 역사는 수없이 교훈으로 전하고 있다. 자존심이 있는 국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민족은 역사에서 반드시 승자로 등장한다. 전성기 고구려는 천하무적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덤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무용총 벽화에는 넘치는 상무정신으로 대륙을 짓밟고 호령했던 고구려인의 용맹과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역사상 최대의 원정군 중 하나였던 수나라 113만 대군을 격멸한 '살수대첩'은 상무정신으로 무장한 위대한 고구려인의 승리였다. '출발하는데만 40일이 걸리고 깃발이 960리나 뻗쳤으며 근고(近古) 이래 이런 출병은 없었다'고 기록했을 만큼 전 국력을 동원했던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실패는 곧바로 멸망으로 이어졌다.

북진정책은 전 시대를 관통하는 고려의 국시였다. 목표의식과 충만한 상무정신으로 고려는 끊임없이 북방 진출을 도모하며 국난을 극복했다. 10만의 거란군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에 불과하여 살수대첩과 비견되는 귀주대첩의 승전보는 상무정신으로 무장한 군민의 승리였다.

한때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했던 몽고의 대병도 끝내 고려를 군사적으로 굴복시키지 못했다.

조선시대 건국 초기에도 상무의 기풍이 전승되어 북방강역의 수복과 함께 대마도 정벌 등 강력한 국방정책이 펼쳐졌다.

'대마도는 옛날부터 우리 땅이었다'로 시작되어 '땅이 막혀 궁벽하고 좁고 더러운 곳이어서 왜적들이 살게 내버려 두었더니 쥐새끼같이 도적질을 일삼으며…'로 이어지는 정벌의 포고문을 보면 조선 초기 국방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약(文弱)에 빠져 국난이 끝없이 이어지고 끝내는 망국의 길을 걸었던 조선 중기 이후의 역사에서 우리는 두고두고 새겨야 할 교훈을 상기한다.

국가가 방비하는 일을 낙관하거나 소홀히 했을 때 국토는 초토화되고 백성들은 참혹한 고초를 겪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처절하게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을 보면 나라에 상무의 기풍이 무너졌을 때 어떤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오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기억하기조차 고통스러운 대한제국의 멸망은 두 번 다시 나라의 방비를 소홀히 하여 국난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새기게 한다.

오늘 이 나라에 상무의 전통은 연면히 계승되고 있는가. 튼튼한 국방은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되고 있는가.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시키려는 역사침략의 망발과, 주변국의 군사력 증강과 북한 핵문제를 보면서 우리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며, 우리 자신에게 단호하게 묻는다. 우리는 이 나라를 스스로 지킬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동맹과의 관계는 돈독한가. 미래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나라의 안전보장 문제는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제1의 당면 과업임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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