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국세심판' 도입 납세자 권익보호

"살다가 힘든 일 생기고, 복잡한 일 겹칠 때는 포근한 고향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고향은 지금도 제게 그런 곳으로 다가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갖고 있는 보령 출신의 전형수 국세심판원장. 전 원장은 최근 'e-국세 심판' 시스템을 도입해 세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획기적인 시스템의 도입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국세통합 전산망 개발을 주도해 세무 행정에서 투명성과 객관성을 획기적으로 확보했다.

▲ 전형수 (보령 출신·국세심판원장)
전 원장은 보령시 남포면 제석리에서 태어났고, 청라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갔다. 백로가 서식하고 지금까지도 날아다니는 청라 지역은 전 원장의 고향 집에서 10분 거리 안팎. 전 원장은 자주 이곳을 들렀고, 그때의 기억을 '포근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두고두고 기억해 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 원장의 모습은 온화해 보였고, 포근하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도 꽤 잘했고, 글씨도 잘 써서 습자부에 들어갔던 전 원장은 도 대회까지 나가 입상을 거둔 바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도시라는 낯선 환경과 교실 분위기를 접하게 된 전 원장은 공부 진도나 친구들의 성향이 달라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전 원장은 대신중·고등학교를 모두 수석으로 졸업했다. 중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한 덕에 고등학교는 3년 내내 각종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다. 그후 연세대 수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한 뒤 지난 74년 이공계 대학 출신으로는 드물게 행정고시(16회)에 합격해 세무 행정에 입문하게 됐다.

"대전청이 충남·북을 모두 관할하는데, 고향이니까 인사·세무 행정이 고르게 집행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도내 세무서를 여러 곳 방문해 봤는데, 보령세무서의 경우 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전 원장은 특히 금융실명제의 계기가 된 '국세통합 전산망' 개발을 팀장으로서 주도했는데, 없던 것 새로 만들게 되니, 번민이나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한다. 이 당시에는 이 분야에 대한 모든 것이 생소해서 민간 사업가들에게조차 대형 정보화 시스템 개발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3년 동안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습니다. 휴일이건 주말이건 거의 매일 밤 12시까지 여기에 매달렸지요.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그런지, 개발을 완료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됐을 때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납세자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수록하는 이 시스템이 가동됨으로써 수작업의 불편함이 사라졌으며, 세무 행정에서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현재는 이 시스템이 없으면 국세청에서 세무 관련 업무 수행이 단 1초도 불가능할 정도다.

기획예산담당관과 총무과정 시절에는 국세청 본청 청사 신축을 하는 데 있어 예산확보, 건축허가 문제, 설계까지 전 원장이 도맡아 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와 국세청간 고위직 순환인사의 첫 사례로 지난해 4월 국세심판원장이 된 전 원장은 "세금 부과하는 일만 평생 해 오다가 반대로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일을 해 보니 보람도 많습니다. 잘못된 세금을 하나라도 더 구제해 주려고 이러저리 궁리를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릅니다"라고 심경을 표현하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심판원은 재경부 산하의 국가기관이며, 심판원장은 기간이 한정된 자리가 아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좌우명인 전 원장은 "일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에 직면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좌절하지 않고 희망적으로 여건을 개척해 나가면서 끊임없이 전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남은 공직생활 동안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일해 가는 곳마다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원장은 지난해 1월부터 '세무조사의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건국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조세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전 원장이 말하는 조세 행정은 국민의 재산권과 깊이 연계된 침해적 행정 분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집행에 있어서 공평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적법성 ▲공평성 및 효율성 ▲민주성이 반드시 요구된다고 했다. 여기서 민주성이란 조세 행정의 계획과 집행에 국민과 납세자의 뜻이 반영되어야 하며,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국세 심판원에는 상임 심판관 4명과 함께 조사관(과장급) 10인과 서기관 및 사무관 39인으로 구성된 10개 조사관실이 있으며, 총 89명의 고위직 공무원이 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 심판원은 심판관회의, 심판관 합동회의 등의 의결기구를 두고 있고, 이들 합의제 회의체가 자유심증에 따라 사건을 심리하며,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있다.

전 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전자제출을 기본으로 한 홈페이지를 주문하는 등 업무시스템의 혁신을 주도했으며, 최근 선보인 'e-국세심판' 시스템의 경우 인터넷상에서 국세 관련 민원처리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 투명성은 물론 공정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김진표 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까지 이 시스템 처리체계 개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을 정도로 개편된 국세 심판원 업무 시스템은 재경부 차원에서도 공을 많이 들인 작품으로 꼽힌다.이 시스템 개편으로 국세 심판 관련 업무 처리기간은 2002년 말 평균 180일 이상에서 2003년 10월 말 현재 평균 140일로 대폭 단축됐다. 또 처리의 효율성을 높여 인원을 늘리지 않고도 처리 업무량이 크게 늘어나 기간 처리건수를 15% 이상 향상시켰다. 아울러 민원해결 비율을 32.1%에서 39.7%로 급상승시켜 결과적으로 납세자 권익 보호에 더 충실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원장은 "납세자가 심판관 회의에 직접 의견을 진술하는 것은 물론 질문 검사신청제 등 납세자 권익보호를 위한 준사법적 절차를 확대·보장하겠다"면서 "중장기적으로는 국세청 심사 업무를 심판 업무로 통합하고 장기적으론 국제심판원이 지방세 심판도 관할하는 조세심판원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세청과 재경부의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전 원장은 업무와 관련된 얘기에서는 특유의 소신과 강한 어필의 제스처를 취하다가도, 고향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다시 예전의 포근함과 온화함으로 돌아가곤 해 재미있는 대조를 보였다.

전 원장은 "고향인 보령을 위해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며 "큰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학금 등을 통해 어려운 후배들을 도와 주는 게 내 소망"이라고 소박한 꿈을 털어놨다.
전형수 국세심판원장은…
▲1953년 4월 27일 보령 출생
▲대신고, 연세대 수학과, 건국대 행정대학원 졸
▲74년 행정고시 합격(16회) ▲충북 영동세무서장, 경기 평택세무서장 ▲주 LA총영사관 세무관, 국세청 국세통합전산망개발담당 과장 ▲97년 국세청 기획예산담당관 ▲98년 동 총무과장 ▲99년 동 기획관리관 ▲2000년 대전지방국세청장 ▲2001년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 ▲2002년 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2002년 국세청 감사관 ▲2003년 재정경제부 국세심판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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