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욱 배재대 교수

실종된 정치와 암울한 경제 속에서도 봄은 오고 있다.

상황에 관계없이 남쪽으로부터 밀려온 따뜻한 기운은 제일 먼저 산수유를 꽃피우고, 물먹은 나무들은 아우성치며 싹을 틔우고 있다.

꽃 타령할 여유도 없이 고비사막을 넘어 한반도에 들이닥친 황사현상은 베일에 가려진 우울한 나라의 유독한 현실을 보는 듯하다.

한껏 봄맞이 준비를 하는 나무들의 기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산불마저 누군가가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요즘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앞 다투어 일어나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100년 만의 폭설은 가뭄 해결에 좋다 할 겨를도 없이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막대한 재해로 돌변해 버렸다.

국가적 손실과 개인의 비극을 채 가늠하기도 전에 단어조차 생소한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사태에 나라 안팎이 혼란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도 이 시점에 눈치 없는 개인과 단체의 화려한 사리사욕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으니 그들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어느 한 방송사 토론회에서 패널들의 탄핵에 대한 끝없는 타당함과 부당함의 혈전 속에서 오만과 독기가 서린 모습을 보고, 찬성과 반대에서 또 다른 분열의 아픔이 느껴졌다.

눈을 부라리며 적군을 질타하는 패널의 눈빛은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처럼 소름으로 전해졌다.

나와 의견을 달리하면 적이요, 같이하면 동료인 오늘날의 현실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격렬한 논쟁과 시위는 우리 모두를 이분론적 틀의 양분된 무리로 나누고, '찬성과 반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이 우리의 앞날을 어둡게하고 있다.

잘나도 못나도 우리가 뽑은 우리의 대표들일진대 이 모든 사태를 누구의 탓만으로 돌리겠는가.

정녕 화합과 상생은 어디로 갔는지 망연자실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이제는 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은 없어야 한다. 냉정한 이성과 판단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다수에 의한 횡포도 소수에 의한 반란도 잠재워야 한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다수와 다수의 의견에 승복하는 소수의 화합이 이 난국을 타개하는 상생의 길이라 생각된다.

지금 우리 국민 모두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을 맞아 경제·외교·문화에 대한 혼란과 충격을 걱정하고 있다.

다행히도 각 분야에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고 신속한 대처가 이뤄지고 있다.

걱정했던 도미노 현상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고통을 통해 성숙한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세상이 기대된다. '네 탓이 아닌 내 탓'인 우리의 배려가 우리의 새로운 민주사회의 시작이다.

역사의 오래고 아픈 수레바퀴가 자국을 남기며 먼 미래를 향해 굴러 갈 때, 우리에게 오늘의 혼란과 갈등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 난국을 타개하고 해결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언 땅 속에 숨소릴 담아 봄을 일궈 내는 억센 생명의 몸짓이 느껴진다.

긴 한파를 인내하고 애쓰며 기다린 땅에는 꽃피는 따뜻한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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