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목원대학교 미술대 회화과 교수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다. 지난 겨울 연일 계속된 매서운 추위로 잔뜩 움츠렸던 몸이 사르르 풀리는 계절의 여왕이 귀환했다. 특히 이번 5월 초에는 소위 '징검다리' 연휴로 불리는 공휴일이 하루 걸러 있어 많은 이들을 들뜨게 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행락철이 도래한 것이다.

백년만의 한파에 연이은 이웃 나라의 자연재해 및 원전사고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잔인한 계절을 뒤로하고 어김없이 봄이 찾아온 것이다. 이에 모처럼 자연이 뿜어대는 자태에 몸을 내맡기며 그간의 경직된 심신을 이완시키려는 상춘객이 곳곳에 넘쳐나는 계절이다.

며칠 전 필자도 여느 상춘객처럼 오랜만에 짬을 내 몇몇 지인들과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섰다. 간단한 취사도구를 챙겨 가까운 곳을 물색하다 자리 잡은 곳이 하필 상수원 보호구역이었다. 상수원 보호구역은 깨끗한 물을 유지, 보존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리라는 것을 모를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들어가는 초입에 별다른 경고문도 보이지 않아 무심코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조촐한 먹을거리와 함께 유유자적 쾌적한 자연경관을 즐기며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뜻하지 않게 담당 단속요원이 들이닥쳐 분위기가 어색하게 된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간단한 취사행위도 할 수 없고 쓰레기로 어지럽히면 안 된다며 속히 그 자리를 떠날 것을 권했다.

단속요원이 보여 준 안내문을 살펴보니 상수원보호구역에서 금지사항을 위반할 경우 엄격한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소스라쳐 황급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일행들의 흥을 깬(?) 단속요원들이 야속했지만 당연한 제재행위라는 생각에 머뭇거림 없이 자리를 정리했다. 일행은 본의 아니게 범법자가 될 뻔 했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떠밀리다시피 자리를 옮기며 우리의 공공질서 의식은 어떠한가를 자문하며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파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뒤떨어진 공공질서의식을 여과 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상춘객이 지나간 곳은 물론 대규모 행사를 치룬 장소 그리고 인파가 북적이는 도심 한복판에도 널 부러진 쓰레기더미의 난잡한 풍경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던 시절, 우리보다 잘 산다는 이유 하나로 선진국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턱없이 모자라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쉽지 않던 때에 선진국의 국민들은 맘껏 배불리 먹으며 호사를 누려 선망의 대상이었고 따라잡기 힘든 신기루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선진국의 국민들은 황새였음이 틀림없고 찌들고 가난한 우리는 뱁새였음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덧 세계 경제대국의 한축으로 자리매김한 우리도 이젠 당당히 황새가 되었다고 부르짖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뱁새가 황새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공공질서의식이 아닌가 한다.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면 선진국이 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분류하는 기준이 단순히 경제규모로 가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너나할 것 없이 후진국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가난에 찌든 궁핍함, 그에 뒤따르는 무질서함이 그것이다. 대조적으로 선진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넉넉함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모습과 함께 대다수 국민들이 보여주는 수준 높은 공공질서의식을 통해 '선진국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후진국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여줄 때 선진국으로서의 자격을 인증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젠 선진국만큼 여유를 갖추었고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공공질서의식 수준을 살펴보면 선진국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 지 강한 의문부호가 남는다.

계절의 여왕으로부터 ‘국민 개개인이 사소해 보이는 공공질서의식을 존중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선진국에 진입한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가 날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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