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의 출발선

1995년.

우리는 이 해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던 해. 1인당 1만 823달러.

그리고 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추락해 버렸다. 악몽의 IMF 외환위기…. 1998년도 국민소득은 다시 6744달러로 급락해 버렸고, 결국 작년까지도 우리는 지난 95년도의 소득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1981년 1만 달러를 달성하고 7년 만에 2만 달러를 돌파했다. 영국은 1987년에서 9년 만에, 프랑스는 1979년에서 11년 만에 이를 돌파했다. 선진국의 추세라면 우리는 지금쯤 2만 달러에 육박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년의 소득은 여전히 1만 13달러일 뿐,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을 따름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 1만 달러의 질곡에 가두어 놓고 있는가.

전문가들은 절규한다. 정경유착을 비롯한 정치권의 부패와, 철밥통에 매달려 있는 관료집단의 무능함과 이기주의에 눈이 먼 노사관계와 분식회계와 족벌체계 기업들의 비생산성을 고발한다. 그리고 개혁의 이름하에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성의 재무장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윤리와 도덕의 문제였던가? 사실 이러한 모순들이나 도덕성은 과거에는 더 나빴던 것들이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개선되어 왔지 악화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더 나빴던 시절에도 8∼9%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는데, 더 개선되고 있는 지금 성장률이 5∼6%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경제의 몸집이 커졌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그 큰 몸집으로 어떻게 도약을 하였을까?

지방자치는 이러한 접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시스템인 것이다.?

1972년 중앙집권의 대명사인 유신 초기의 국가재정 규모는 일반예산 기준 7011억원이었다. 성장률 11%를 구가하던 1986년은 13조 8005억원. 그리고 2003년 국가는 111조 4830억원, 충남도 예산은 5조 799억원, 서울시의 경우 15조 8961억원이었다.

불변가격 기준은 아니지만, 충남도는 유신 시절 국가예산의 6.4배의 재정을 운용한다. 이제 우리의 각 광역자치단체는 모두 20∼30년 전 한 국가의 1년 예산 정도의 재정을 집행하는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소득 1만 달러 미만의 1차 농경산업사회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먹고는 살 수 있다. 그러나 자가용을 갖는 2차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근면이나 윤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조나 수출로 산업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나아가 별장과 요트를 가지려면 부가가치 정도가 아닌 창조가 따르는 3차원적 연구개발의 체제 변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소득 1만 달러 이하의 국정운영을 중앙집권의 1차원적 시스템이라고 한면, 2만 달러 국정은 중앙과 지방의 2차원적으로, 3만 달러는 중앙, 지방, 시민의 3차원적 운영으로 시스템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 시스템 변화의 첫 실마리가 지방자치요, 분권의 논리인 것이다.

분권의 논리는 중앙과 지방의 권한다툼이 아니다. 분권을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관점에서 주민의 자치권 또는 자치단체의 자율권을 증대시킨다는 정치현상으로만 이해하거나, 여건 성숙이 안 되었으니 시기상조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늘 권한 배분 타령이나 하는 감정의 골만 키울 뿐, 진정으로 분권이 국가 경쟁력으로 연계되기는 어렵다. 어느 성실한 농민이 '공부가 밥 먹여 주느냐'며 자식을 학교에는 안 보내고 새벽부터 열심히 김만 맨다면 그는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아이를 혹 서울로 보내면 타락할까 무서워 시골에만 묶어둔다면 그 아이는 고급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고, 결국 그 집안에서 별장을 갖는 3만 달러의 소득은 불가능하다.??

분권을 통해 자식을 서울로 보내 자립하게 해 주어야 하고, 자식은 부모를 생각해서 절약하고 열심히 공부해 부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1995년. 전면적 지방자치 실시의 원년이자,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 원년. 그리고 우리는 멈추고 있다. 이제 3차원적 국정운영의 시스템으로서 중앙과 지방, 그리고 주민이 분업하는 방향으로 분권은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분권을 향토장학금 정도로 여겨 타락의 길로 빠지면 우리는 더욱 추락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추락이냐, 새로운 도약이냐는 이 지방분권의 시스템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달려 있는 우리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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