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한이 만난 사람]독일 분데스리가 진출 구자철 선수 아버지 구광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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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보다 인성이 좋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철이는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가족들이 운동에는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철이 형은 농구선수였고, 저도 운동을 곧잘 좋아합니다.”

구자철 선수의 아버지 구광회(52) 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인성과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아들에게 조언은 해줄지언정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소풍가는 것처럼 즐겁고 신바람 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란다.

“부모 자식 간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잘해도 자식이 따라주지 않으면 힘듭니다. 유능한 선수들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는 군(공군 부사관) 전역 후 기업체에서 고액연봉 제시가 들어왔지만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마다했다고 한다. 그는 항공기정비 기술자다. 훌륭한 선수를 키우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논산시 양촌면이 고향인 그는 지금 대전시 유성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이 고향인 줄 알고 있다. 그곳에 지금도 가족들이 살고 있나.

“양촌면 거사리에서 태어났지만 직업군인이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생활을 했다. 자철이는 1989년 대구 근무할 때 태어났다. 자철이는 처음 충주 남한강 초등학교에 다녔다. 형과 또래친구들과 어울리며 공을 찼다. 남한강 초등학교는 축구부가 없어 인근 중앙초등학교 창단멤버로 들어갔다. 형님이 양촌에 계신다. 누나가 신탄진에 살고 동생은 오정동에 살고 있다.”

-아시안컵 이후 아들 때문에 유명세를 탔을 것 같다.

“서울에서 기자들도 내려오고 전화 인터뷰도 빗발쳐 조금 불편하다. 특히 생활하는 부분에서 조심스럽다. 어디가면 아는 사람들이 구자철 아버지라고 소개한다. 지역 언론과는 처음 하는 인터뷰다."

-구자철 선수가 '제2의 박지성' 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 때 기분은 어떤가.

“내심 좋기도 하지만 자철이는 박지성 선수와 다른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다. 언젠가는 '제2의 박지성'이라는 수식어가 없어지겠지만 그 시간이 빨라졌으면 좋겠다. 박지성 이상 가는 선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분은 좋다.”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고 최근 데뷔전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내심 교체라도 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막상 나오니까 많이 떨렸다. 첫 시험무대에서 자철이의 색깔과 기량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출전시간을 보장받기 힘들다. 그리고 몸 상태가 좋았으면 걱정이 덜 할텐데 지난해 (자철이가) 너무 많이 혹사를 당했다. 기본 K-리그 경기, 각종 컵대회를 비롯해 청소년대표, 국가대표에 차출돼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등을 소화했다. 이에 따른 체력적 부담을 많이 호소했다. 특히 입단 이틀 만에 데뷔전을 치러 걱정을 많이 했다. 초반에는 헛발질 등 실수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패스도 풀리고 팀플레이에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아버님도 축구박사처럼 보인다. 운동은 잘하나.

“축구하는 자식이 있으면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 나도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만 운동장에 쫓아다니면서 피부로 느낀 것이 많다. 초등학교 당시에는 경기장에 잘 가지 못했지만 인근에 친선경기가 있으면 학부형들과 가서 많이 봤다. 당시 자철이는 영리하게는 차는데 신장도 작고 힘에 부쳐 몸싸움에서 많이 밀렸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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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크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중학교 들어갈 때 키가 146㎝에 불과했다. 너 키 클래, 안 클래 하면서 우유를 먹였다. 처음에는 설사를 하더니 6개월이 지나 적응을 하더라. 물대신 우유 먹고, 우유에 밥을 말아 먹을 정도였다. 그 때부터 키가 부쩍부쩍 크기 시작했다."

-스위스 영보이스에서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선회한 배경은.

“영보이스는 고마운 팀이다. K-리그, 아시안게임을 통해 자철이를 보고 적극적으로 영입의사를 전했다. 특히 단장과 감독이 너무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쳤고 무엇보다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 관중 있는 무대와 분위기에 자철이가 매료됐다. 물론 제주와 팬들의 반대도 있었다. 그래서 자철이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겼다. 아시안컵을 통해 자철이가 새로운 포지션을 소화하는 것을 보고 영보이스 보다 좋은 팀에서 컨텍(contact)이 왔다. 하지만 영보이스를 바로 '안간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적기간이 임박할 때까지 길게 내다보고 이적을 추진했다.”

-혹시 계약금 문제는 없었나.

“돈 관계의 문제가 아닌 팀 선택의 문제였다. 이후 독일로 가서 볼프스부르크와 계약을 맺고 영보이스와의 문제는 볼프스부르크 고문 변호사와 에이전트 등이 나섰다. 영보이스가 피파(FIFA·국제축구연맹)에 제소해 위약금을 받아낸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손해다. 영보이스가 제주 몰래 자철이와 사전접촉을 했다는 문제도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영보이스도 자철이를 영입한다고 언론에 공표했는데 명분을 세운다는 차원에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행을 선택했다. 대전 시티즌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자철이는 고등학교 당시 발전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시기인 3학년 때 빈혈이 있어 자주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다가왔다. 제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갔고 당시 정해성 제주 감독이 우연찮게 자철이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이후 정 감독은 자철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적극적으로 3순위든, 5순위든 뽑겠다고 호언했다. 구단에서는 반대했지만 결국 3순위로 제주에 승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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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대학진학에 대한 미련이 남을 텐데.

“나는 프로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광운대에서 구애가 있었지만 보인고등학교 감독이 아까워서 못준다고 했다. 자철이가 어느 날 전화를 해 서울에서 좋은 학교(연세대)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 안 된다는 통보가 왔다. 돈 문제였다.”(그는 돈을 주고 대학을 보내는 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창시절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다. 심지어 골키퍼까지 한 걸로 알고 있다.

“대부분 공격수로 뛰길 원하지만 선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감독 밖에 없다. 감독 눈에는 선수에 적합한 위치가 보인다. 자철이도 처음에는 센터포워드로 뛰다가 미드필더, 수비 다 소화했다. 이후 수비에 많이 치중했다. 그래서 한 때 자철이가 수비라는 포지션에 짜증을 낸 적이 있다. 당시 볼배급, 어시스트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결국 수비수로서의 역할 수행이 자철이의 큰 재산이 됐다. 모든 경기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을 텐데, 아시안컵 승부차기 실축 때의 심정은.

“자철이가 나오는 걸 보고 이건 아닌데 싶었다. 결과론이지만 첫 키커는 고참 선수를 배치해야하지 않았나 싶다. 자철이에 이어 이용래, 홍정호도 연달아 실축했다. 아마 중압감이 대단했을 것이다. 자철이가 연습할 때는 가장 잘 찼다고 한다. 대회 끝나고 나서는 경기이야기는 안한다. 못 넣은 것 이야기해 기죽일 필요는 없다. 그냥 '잘 하더라' 한 마디다. 어제도 전화가 와서 이야기했다 '잘 하더라'”

-운동선수를 기르며 가장 보람 있었을 때는.

"프로에 입단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 남한테 말로만 듣던 프로선수가 가족에도 있구나 생각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2007년 4월 프로 데뷔전이었다. 경기장 갈 때는 마냥 '학원축구' 생각만 하고 갔는데 경기를 지켜보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학교 때 하지 못한 볼배급과 축구지능이 봇물처럼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정해성 감독님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정해성 감독하고는 전화통화도 못하지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구자철 선수가 어떤 선수가 됐으면 좋겠는가.

“운동도 좋지만 내면적으로 인성이 돼 있는 선수가 돼야 한다. 운동도 잘하지만 인성이 좋은 선수들이 팬들에게 사랑받고 오래 남는다. 어린 후배들이 나중에 자철이를 롤모델로 삼고 배울 수 있는 인성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도 인성이 우선이다. 이제 시작이다. 골인지점 생각하면 지루해지고 피곤해진다. 항상 자철이에게 말한다. 한 발짝 마다 생각하고, 뛸 때마다 감사하라고. 그리고 어차피 인생은 자철이 스스로 결정한다. 단 아니다 싶으면 조언한다. 그래도 아버지의 조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네 생각대로 가라고 하겠다.”

-축구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로 아이들이 경기할 때 어머니들이 간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직장일로 경기장을 다니기 어렵다. 어머니들은 오직 내 자식만 쳐다본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감독이 경기에 투입하지 않으면 불만이 가득하다. 시야를 넓혀 전체를 다 보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경기장에 자기 자식만 뛰는 것이 아니다. 내 자식을 찾지 말고 모든 선수들과 경기 전체를 봐야 한다. 그래서 눈에 띄는 선수가 내 자식이라면 모든 것을 지원해라. 그리고 지도자들의 조언을 많이 들어라. 무엇보다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말고 '수고했다'고 등을 두들겨줘라. 기대만 갖지 말고 내 자식의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부모가 자식 기죽이면 절대 안 된다.” <논설실장> 정리=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

사진= 김호열기자 kimh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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