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일 대전대 경제학과 교수

신년초부터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싸우게 하는 어리석음의 정치를 우리는 분노의 눈으로 보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문제는 대전·충남·충북지역민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우째 이런 일이…."라는 탄식(歎息)이 저절로 나오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곳이 정치판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고, 그것도 온 국민 모두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한 말이기에 설마했지만 TV를 통해 '백지상태에서 재검토'도 모자라 '공약집에도 없었던 일' 운운하는 데는 화가 머리 끝까지 안 날 수가 없다.

대통령은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공약집에도 없는 사업을 감언이설(甘言利說)했다고 하지만, 한나라당 공약집 50페이지를 보면 ‘행복도시, 대덕연구단지, 오송·오창의 BT·IT 산업단지를 하나의 광역경제권으로 발전시켜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육성하겠습니다’라고 선명하게 써 있다. 국민의 막대한 혈세(血稅)가 들어가고 초일류 과학기술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이 사업에 대해 대통령이 만약 공약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없다고 했다면 거짓말의 달인인 셈이고 정말 공약집에 없는 줄 알았다면 대통령과 청와대의 직무유기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러한 언행은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대전·충청권으로 당연히 선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역민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지만, 다른 지역 사람, 특히 정치인들에게는 호재 중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기 지역으로 유치하려는 억지 논리를 총동원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력의 낭비다. 지난 번 세종시 건설에 대한 약속을 파기하는 바람에 큰 고통을 받았던 우리 충청인으로서는 더욱 더 분노를 느끼고 있다. 무릇 정치란 막힌 데를 뚫어주고 굽은 것을 펴주는 것인데 그 반대로 가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 자원을 쓸 때, 그것이 투자이든 소비이든,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선택과 집중'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분산'의 방식이다. 전자를 택하면 한 곳에 많은 자원이 투자되기 때문에 ‘규모(規模)의 경제(經濟)(scale economy)’를 향유할 수 있다. 이것은 경제가 빈약할 때 혹은 단기간에 효과를 극대화할 때 쓰는 전략이다. 그러나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난 후에는 부분간의 불균형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만약 수정의 시기를 놓치게 되면 사회의 불안정을 야기시킬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전략이다.

반대로 분산의 방식은 자원이 널리 쓰임으로써 여러 부문에 골고루 혜택이 주어진다는 균형혜택의 이점과 위험이 닥쳤을 때 한 곳에 집중한 경우보다는 위험이 분산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러 곳에 자원을 쓰기 때문에 효율성 면에서는 떨어지는 전략이다. 따라서 이 두가지 방식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주어진 여건과 목표에 따라 달라진다.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무렵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는 반면 불균형을 감수해야 하지만 투자된 부문이 성숙단계에 이르면 그 동안 소외받은 곳에도 균형있게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을 막 시작하려는 시기이다. 대덕연구단지, 세종시, 오송, 오창에 기존 인프라를 묶음과 동시에 필요한 자원을 투입하면 가장 경제적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만들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과학기술의 균형 발전을 근거로 이 사업을 분산시키려는 것은 맨 땅에 헤딩을 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공약대로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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