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갠지스강변의 소.

인도에서는 소를 '숭배'한다고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다. 브라만, 끄샤뜨리아, 바이샤 그리고 수드라 같은 계급제도 카스트, 석가모니의 출생지, 신성시 하는 갠지스 강처럼 인도에 관한 지식은 양적으로 상당했다. 그중 정확한 것도 있지만 석가모니의 출생지는 정확히 말해 인도가 아니라 지금의 네팔 영토라는 사실 같이 일부 오류도 섞여있다.

원시와 첨단, 빈곤과 풍요 그리고 이러저러한 알 수 없는 현실이 난마와 같이 얽혀 오늘의 인도를 보여준다. 지금 12억 인구이니 머지않아 중국을 추월하여 세계최대 인구국으로 등장할 날도 머지 않은듯하고 그 대부분이 젊은 계층이라 그들이 미래에 희망을 걸만도 하다. 물욕에 대한 별다른 집착이나 살벌한 경쟁이 그리 심하지 않음은 힌두교 가르침 때문일까, 더운 나라 국민들의 공통된 기질 탓인지도 모르겠다.

전 국민의 80%이상이 힌두교도라 소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에서 소들은 일단 도축, 죽음의 공포로 부터 자유롭다. 소고기 대신에 닭, 양, 염소 고기가 애용된다. 특급호텔 레스토랑에서도 비프 스테이크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국내 조달체제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태국 같은 동남아 국가에서 수입되는 소고기가 무슨 맛이 있을까.

그러나 '숭배' 되는 소는 힌두교 사원에 조성된 형상화된 소의 모습일 뿐 우보(牛步)우행(牛行), 그저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인도 소들의 일상이다. 주인이 노동목적 또는 고기나 우유를 얻기 위해 알뜰하게 거두어 먹이고 돌보지 않으니 대부분 비쩍 말라 피골이 상접해 있어 '숭배'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대도시 번화가 대로를 활보하거나 고속도로에서도 소떼 행렬은 여유 그 자체였다. 시골에서는 먹을 것이 궁했는지 쓰레기통을 뒤지는 소들이 많았고 상점가, 주택가, 강가, 텃밭 곳곳이 소들의 놀이터였다. 노역에 동원되어 밭을 매고 기타 허드렛일도 하지만 일단 노동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도축하여 소비하지 않고 여생을 마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숭배'라면 숭배일지 모르겠다.

소들도 자신에 대한 '방관'에 보답을 한다. 농촌에서는 소똥을 정성스럽게 벽돌블럭 모양으로 말려 연료로 사용한다. 배가 고파 거리를 헤맬지언정 우리나라처럼 '살처분'의 공포는 거기 없다.

벌써 400만 마리에 육박하는 소, 돼지가 생매장된 우리 구제역 대재앙 속에서 인도 소들이 부러워 보인다. 채식주의자, 이런저런 까다로운 식성으로 기내식 준비가 힘들어 스튜어디스들은 기피노선으로 인도행을 꼽는다는데 우리도 이 기회에 육식선호, 고기선호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성찰이 있었으면 좋겠다.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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