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같은 포근한 단체… 정치색 배제"

▲ 유근창 충청향우회 총재

"사람이 직접 행동한 일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기억하게 됩니다. 70년 전에 고향에서 쥐불놓이 하던 생각이 지금도 또렷이 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요."

공주 마곡사 인근인 사곡면 출신 유근창 충청향우회 총재는 출향 충청인들의 '대부'로 불린다. 몇 년 동안 여러 이유로 사분오열됐던 충청 향우단체가 최근 통합되는 과정에서도 유 총재는 특유의 인화를 발휘했다. 유 총재는 "향우회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져서는 안되지요. 고향사랑, 향우사랑, 상부상조를 위한 순수 민간단체가 돼야 여러 말이 안나옵니다"라며 순수성을 유난히 강조한다. 유 총재는 출향인으로 여러 면에서 '기록'을 갖고 있는데 충우회 회장을 22년간 역임했고, 유관순 기념회장이며 종친회 회장을 근 40년간 맡아 오고 있다. "내가 한 자리에 오래 있는 스타일인가봐요. 주공사장, 원호처장(현 국가 보훈처) 등도 근 4년 정도 했으니 장관들이 6개월을 못가는 지금 상황을 보면 내가 무난한 관리형인가봐요."

유 총재는 1982년 충우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향우회 리더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그 당시 충청향우회는 한 3년 동안 공백이 있었어요. 1979년 충청향우회 총회에서 향우회장을 경선으로 뽑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경선을 못했어요. 그러니 임원단 구성도 안됐고. 그런 와중에 10·26이 터져 친목단체들의 활동이 중단됐지요. 그러다가 1982년에 향우회를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임원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비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충우회장에 추천됐지요."

주변에서는 유 총재에 대해 '인덕이 있는 인물'이란 평가가 많다. 통합향우회 초대 총재직에 '이견이 전혀 없는 전원 합의'로 유 총재가 선출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유 총재는 어렵사리 통합된 향우회 운영에 대해서도 '봉사와 화합'을 강조하며 확고한 원칙을 제시한다. "향우회 운영은 지역향우회 활성화와 중앙회의 지원체제로 가야 합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향우회를 포함해 전국 향우회, 나아가 해외 향우회가 풀뿌리 조직을 갖고 자발적으로 활동해야 합니다."

총선이 코앞이라 향우회의 정치적 활동 등에 대해 묻자 "자생적으로 활동한다면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역별로 함께하는 행동을 막기보다는 자발성을 키워 줘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정치적 색채를 앞세운 향우회 활동은 자제해야지요"라며 자연스러움과 자발성을 강조한다.

유 총재는 서울 마포와 낙원상가에 분리 운영되는 향우회 사무실을 하나로 통합해 장교빌딩 12층으로 옮기고 있다. 인터뷰를 한 지난달 25일도 사무실 정리가 진행 중이었다.

"기본 틀을 잡는 일을 내가 하고 나면 후임자는 그 일을 발전시켜 나갈겁니다. 내가 흘러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향우회장을 맡은 것은 애향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한 겁니다. 차기 향우회장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충청향우회는 지난달 27일 지역향우회 회장단을 당연직 운영위원, 출향인 125명을 운영위원으로 임명하는 등 본격적인 조직 규합에 나서고 있다. 향우회는 올해 총선이 있는만큼 5월에는 범충청권 당선 국회의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환영 행사도 계획 중이다.

충청권 최대의 현안인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 유 총재는 "출향인들은 충청권이 국토의 중심으로 발돋움한다는 데 대해 이견이 없어요. 고향발전을 위해 우리도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최근 '충청인 노벨상 수상자 만들기' 대상자로 꼽히고 있는 서울대 황우석 교수에 대해 "지난번 향우회에도 황 교수에게 나오라고 내가 특별히 연락했어요. 고향 선후배들간에 인사를 나누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생명공학계의 획기적인 업적이 있는만큼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좋은 방법이 나온다면 향우회가 조직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유 총재는 고향언론과의 인터뷰 때문인지 "향우회 기사를 쓸 때 가능하면 '좋은 면'을 많이 부각시켜 주세요. 덕담만 오가도 부족한데 싸우는 모습으로 비쳐져서는 곤란한 것 아닙니까"라며 '협조(?)'를 당부한다.

9세 때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고향을 떠나 큰형 근한씨가 살고 있던 서울 흑석동으로 이사했던 유 총재는 서울생활이 70년에 가까워 온다. 군 생활을 오래 했던 탓에 서울에서만 이사를 20번 가까이 했던 그는 군내에서도 '원로' 그룹이다. "내가 육사 2기입니다. 육사 1, 2기를 합쳐 193명인데 지금 생존하는 사람은 40여명 정도 되지요.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육사 8기로 후배고 현역, 예비역 장성들도 모두 후배인 셈이지요."

인터뷰 마무리에 '지금 이맘때면 어린 시절 무얼 하셨나'라고 묻자 "겨울이니 들판에서 쥐불놓이를 많이 했지요. 그 기억은 직접 내가 했던 일이라 지금도 또렷하지요. 사람의 기억은 자신이 했던 일은 그리 쉽게 잊지 못하는 특징이 있거든요"라고 전한다.

유근창 총재는…

▲1926년 충남 공주생 ▲육군사관학교(2기) ▲동국대 문학과, 육군대, 국방대학원 졸 ▲명예 철학박사(대만 문화대) ▲30사단장, 20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5군단장, 국방부 인력차관보, 국방부 차관, 원호처장 ▲토지개발공사 사장 재경충우회장,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장 ▲한국주택협회장, 충남발전협의회장, 청구 건설 부문 상임고문 ▲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 홍조·청조근정훈장, 보국훈장 국선장·천수장, 서독 십자훈장, 태국 백상훈장, 자유중국 운마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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