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토일]‘따뜻한 남쪽 청와대’ 청남대

▲ 청남대 메타세콰이아길은 대통령들이 조깅과 산책, 독서를 하던 곳이다. 가는 길에 전직 대통령들의 취미를 형상화한 동상들이 있다.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 헷갈리는 쌀쌀한 11월이다. 딱히 휴가철도 아니고 단풍놀이하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고, 그래도 비어있는 시간이 생겨 어디든지 가고 싶거나 흔히 하는 말로 그냥 바람 좀 쐬고 싶을 때는 '뻔한' 혹은 '검증된' 곳이 좋다. 그런 곳이 바로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가 아닌가 싶다.

◆19 … 25 … 28 … 15 … 1 … 5000000

청남대의 첫인상은 눈부심 이었다. 대청호를 따라 푸르른 나무들 사이로 난 호반도로(진입로)를 달리는 기분은 서글프기까지 했다. '이런 곳은 직장동료가 아니라 연인과 와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샘솟는 눈부신 풍경이었다. 청남대 입구로 들어서니 '이런 곳이 왕을 위한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기는 왕의 공간 '대통령 별장'이다. 대청댐 준공식(1980년 12월)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의 "경치 좋다"는 말이 씨앗이 된 곳이다. 그래도 얼마 전 추징금을 300만 원이나 자발적으로 내신 그 분의 판단이 틀리진 않은 것 같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지 7년 6개월 만에 500만 명이나 다녀간 것을 보면.

본격적으로 청남대에 들어서기 전 이곳의 역사부터 살펴봐야겠다. 청남대는 전두환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1983년 6월18일 착공해 같은 해 12월27일 준공됐다. 준공 당시 이름은 영춘재였지만, 3년 후인 1986년 7월18일 청남대로 개칭됐다. 대통령을 위한 비밀스런 공간이었던 청남대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2003년 4월18일 개방(충청북도로 이관)됐으며, 개방 후 하늘정원·호반산책로·음악분수·습지생태원·대통령광장 등이 새로 생겼다.

청남대를 거쳐 간 대통령은 모두 다섯으로 11대 전두환 대통령부터 16대 노무현 대통령까지다. 전두환 대통령은 19번, 노태우 대통령은 25번, 김영삼 대통령은 28번, 김대중 대통령은 15번 청남대를 다녀갔으나 청남대를 개방한 장본인인 노무현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단 한 번 청남대를 찾았다고 한다. 청남대 관람코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본관→오각정→그늘집의 1시간 코스, 본관→오각정→양어장→그늘집→대통령광장→초가정의 2시간 코스, 호반산책로→양어장→본관→오각정→그늘집→대통령광장→초가정의 2시간30분 코스가 그것이다. 우리는 기본코스를 살짝 바꿔 본관에 들른 뒤 오각정→그늘집→대통령광장→초가정을 보기로 했다.

청남대를 찾는 이들이 가장 궁금한 곳은 본관 건물일 것이다. 청남대 본관은 지상2층, 지하1층, 연면적 2699㎡ 규모로 다섯 명의 대통령이 471일 이용한 곳이다. 본관 구조나 대부분의 집기류는 27년전 그대로며, 그 후 각 대통령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교체됐다.

1층에는 회의실과 접견실, 식당, 손님실 등이 있었다. 1층은 그냥 휙하고 지나친 것 같다. 그냥 박물관 같은 느낌에, 뭔가 휑한 기분에 그랬던 것 같다. 1층을 훑어본 우리는 가족전용계단을 거쳐 2층으로 올라갔다. 대통령 별장으로 쓰이던 당시에는 경호실장도 밟지 못한 계단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우쭐해졌다.

대통령 전용공간인 2층은 1층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2층에는 대통령의 침실, 집무실, 서재, 거실, 식당, 가족실, 한실 등이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운영의 중대한 고비에서 이곳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했단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거실의 흔들의자를 보며 우리의 역사를 바꾼 '청남대 구상'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 ?
◆청남대 3경

우리는 화려하다기보다는 깨끗하고 소박한 느낌인 본관을 나와 청남대 3경중 1경인 오각정으로 향했다. 본관에서 오각정까지는 350여m의 고운 황토오솔길이 펼쳐져 있다. 오각정은 대통령 내외와 가족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곳이며,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 이곳을 제일 많이 찾았다. 안내원은 유일하게 김영삼 대통령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던 곳이 오각정이라는 말도 전해줬다. 오각정에 오르면 대청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낮에는 호수와 산을, 밤에는 달을 벗 삼을 수 있다.

오각정을 뒤로한 우리는 청남대 3경인 그늘집으로 향했다. 그늘집은 청남대 내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이며, 조깅·산책시 휴게실이다. 특히 그늘집의 베란다는 경치가 좋아 오찬 장소로 애용됐다고 한다. 그늘집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대통령 광장까지 이어지는 조깅로에는 달리는 YS, 책 읽는 DJ, 자전거 타는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의 동상이 눈길을 끈다. 또 이 길은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 소지섭이 걸었던 길로도 유명하다.

소지섭의 발길을 따라 우린 대통령 광장으로 갔다. 지난해 1월 생긴 대통령 광장에는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청동상이 있다. 또 청동상 뒤편에는 백악관, 버킹엄궁 등 세계 9개국의 대통령궁·왕궁의 사진이 들어간 타일벽화가 광장의 역사적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대통령 광장을 지나면 청남대 2경인 초가정이 있다. 초가정은 국민의 정부 초기 초가집과 정자를 짓고 김대중 대통령 생가인 하의도에서 가져온 농기구와 문의지역의 전통생활도구 70여 점을 전시하고 주변을 야생화와 소박한 울타리로 두른 곳이다. 초가정에서 대청호를 바라보니 외딴섬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이곳에 앉아 사색하던 DJ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밖에도 청남대에는 역대 대통령이 쓰던 물품 1500여점이 전시된 대통령역사문화관, 맑은 날이면 신탄진과 대전까지 보인다는 전망대, 연인들을 위한 호반산책로 등의 볼거리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청남대는 대청댐으로 생겨난 곳이다. 대청댐은 수몰민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그 아픔과는 별개로 '대통령만을 위해' 쓰이던 이곳은 20여년이 흐른 후에야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청남대를 우리에게 돌려준 대통령은 이미 역사가 됐지만, 500만의 발길이 다녀간 청남대에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생겨나고 있었다. 흘러간 역사의 흔적과 이 시대의 사람들, 그리고 대청호의 아름다운 자연이 공존하는 그곳이 바로 청남대다.

노진호 기자 windlake@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