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언복 목원대 교육대학원장

대학에 '평가제'라는 것이 도입된 지도 벌써 십 년 가까이 되는 듯싶다.

그동안 한 차례씩 평가를 치른 바 있는 나라 안의 모든 대학들은 벌써 두 번째 평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교수들 중에는 평가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 의도나 목적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채 '하라니까 해야 하는가 보다' 싶어 수시로 전달되는 지시 혹은 지침에 따라 작업에 쫓기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평가는 4년 주기의 종합평가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이외에도 각종 대학원 평가, 교양과정 평가, 사범계열 평가 등과 같은 여러 형태의 부문별 평가들이 있고 일반 언론사 평가까지 있으니 대학은 가히 평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평가를 경험해 본 교수들 사이에선 평가제에 대한 평가들도 적지 않게 쌓여 가고 있다.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평가제의 순기능을 지적하는 긍정적 평가들도 있고 역기능을 강조하는 부정적 평가들도 있다.

주먹구구식 대학 경영과 학사운영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되고 있는 반면, 막대한 비용과 인적, 시간적 자원을 필요로 하는 평가제의 시행이 과연 당초 의도한 교육환경 개선이나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일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도 적지 않은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순기능적 의미를 높이 사고자 하는 목소리들보다는 그 역기능과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훨씬 높은 것이 사실이다.

평가과정에서 나타난 갖가지 뒷얘기들이 설화처럼 구전되고 있기도 하다.

평가 준비과정에서 동원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온갖 편법들과 관련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평가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제공된 갖가지 '서비스'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이르기까지 그 설화들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흥미'도 더해 가고 있는 듯하다.

평가를 받는 교수들의 입장에 한정해 보면, 곧잘 대립하여 충돌하는 연구·교수·사회봉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묘책이 도무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공들여 얻어낸 평가 결과가 실질적인 대학의 질적, 내용적 수준과 일치한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매체나 거리 곳곳에는 겹겹이 '최우수', '우수' 등으로 수식된 대학 홍보문구들이 사태를 이루고 있다.

평가 주체들이 그렇게도 위하고 섬기는 교육소비자들로서는 정작 뭐가 뭔지 판단만 더욱 어렵게 하고 혼란만 부추기고 있을 뿐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우수하지 않은 대학 있느냐?"는 냉소가 따가울 지경 아닌가.

평가의 생명은 신뢰성에 있는 법. 평생 보직 주변만 전전하며 '업적' 쌓은 교수를 신뢰할 수 없고,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간판만 옮겨 달아가며 높여 놓은 공간확보율을 신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순전히 장부 짜맞추기식으로만 올려놓은 재정자립도를 신뢰할 수도 없거니와 현실과는 거리가 먼 급조된 서류상의 진실을 신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교육소비자들의 선호도만큼 확실한 평가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지금쯤은 평가제 자체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고려해 볼 시점이라고 믿는다.

평가제 도입의 근본 취지부터 냉정하게 따져 묻고, 필요한 일이라면 그 순기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다시 강구해 내야 할 시점이다.

누구도 그 평가의 가치를 일반적 인식 이상의 것으로 신뢰하지 않는 평가제를 그대로 강행하는 것은 무의미한 소모적 행사에 지나지 않는 일이며, 해마다 이 같은 소모적 행사에 지나지 않는 평가의 굴레에 얽매여 있기에는 우리 대학들이 처해 있는 사정이 그다지 한가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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