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내가 매일 새벽 오르는 공주의 호태산은 송림이 우거져 그 숲길이 더 없이 좋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웬 사나이가 산 위에서 외치는 고함소리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명상에 잠겨 걷는 고요한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때로는 귀를 막기까지 하다보니 미워지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와 나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몇일 전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폐암 환자인데다 우울증 까지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이 숲길을 걷는것이 좋고 소리를 지르면 우울증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그동안 그에게 가졌던 미움, 갈등이 사라지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그와 나 사이에 갈등은 없어지고 몇 일 그 소리를 못 들으면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와 나는 완전히 소통을 이룬 것이다.

요즘 세상 화두는 '소통'이다. 정치는 정치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교육계를 비롯 사회전반에 걸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갈등이 심각하다고 걱정들이다. 대통령과 국민, 보수와 진보 심지어 종교계까지도 소통이 문제라는 것이다. 소통이 안 되면 갈등이고 충돌이다. 유태인의 속담에 '마누라가 작으면 허리를 굽혀라'는 말이 있다. 키 큰 남편은 키 작은 아내에게 대화가 잘 되게 하려면 말 할 때 먼저 허리를 굽히라는 뜻이다. 키 큰 남편이 몸을 낮추지 않으면 소통이 잘 안 된다. 참 좋은 말이다. 모든 정치인, CEO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한때 우리나라 민간 항공기 안전사고가 제일 많다는 불명예를 안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도가 높은 항공사로 인정받고 있다. 왜 그런 변화가 왔을까?

바로 소통이다. 우리 조종사들 사이에 영어가 서툴러 외국공항의 관제탑과 소통이 잘 안됐고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는 한국말로 할 경우 아랫사람이 존칭어를 쓰기 때문에 그 뜻이 애매하게 전달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로 대답했다면 '예스!'든 '노'든 간단하고 분명하다. 소통은 바로 이처럼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분명해야 한다. 어정쩡하게 답변하면 소통도 아니고 오히려 사고로 이어진다. 정부와 국민간의 소통, CEO와 조직과의 소통도 그렇게해야 신뢰가 쌓이고 그 진정성은 갈등을 녹이게 된다. 정치의 소통 뿐 아니라 집단 민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주의 원자력 폐기물 처리장 해결이 그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도 안희정(安熙正) 충남도지사가 보여주고 있는 대내외의 소통행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계층의 폭을 넓히는 대화확대에서부터 최근 유행되고 있는 트위터를 통해서 그리고 4대강 살리기 등 현안문제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의견수렴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 그렇다. 그것은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업무의 전략적 차원에서보다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의지다.

'개혁의 군주'로 통하는 정조임금도 자기 아버지 사도세자를 무참하게 죽게 만들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한 노론, 그 우두머리 심환지에게 머리를 굽혀 299통이나 되는 비밀편지를 보낸 것이 최근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여러작품에서 정조독살의 배후인물로까지 지목된 심환지이지만 대립의 정치구도에서 자신이 추구하려는 소통의 노력이 아닐까? 어느 시대나 소통은 정치의 생명이며 도(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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