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앞둔 열매 싹쓸이 … 농민들 분통·한숨
지자체, 총기사용 손사래·대책은 차일피일

▲ 지난달 30일 대전 동구 삼정동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이 멧돼지로부터 피해를 입은 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대전시 동구 식장산 인근에서 과수원을 하는 송현기 씨는 요즘 복숭아밭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샌다.

올 봄 이상기온 탓에 작황이 30% 이상 줄었는데다 곧 수확을 앞둔 복숭아를 새벽마다 멧돼지가 출몰, 싹쓸이 하다시피 먹어치우니 올해는 절반이나 수확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송 씨는 "아침마다 복숭아밭에 나와 보면 울화통이 치민다"며 "과수만 따먹는 것도 모자라 나뭇가지를 모두 부러뜨려 놓으니 내년 농사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본격 수확을 앞두고 있는 대전지역 과수농가들이 멧돼지 등 야생동물에 의한 잇따른 농작물 피해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해당 지자체에서 뒤늦게 피해농가 주변에 전문엽사를 배치하는 등 관련대책을 내놨지만 관련 규정을 내세워 야간 포획을 금지하면서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포도나 복숭아 등 과수농가가 많은 동구지역은 올 들어 접수된 야생동물 피해만도 수십여건에 이른다.

예전 봄과 가을철에 주로 출현하던 멧돼지는 한겨울을 제외하고 연중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는 수확을 앞둔 복숭아를 비롯해 고구마 밭을 습격하고, 가을에는 사과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소방본부에 접수된 동물구조 및 포획건수는 총 416건으로, 절반 이상이 5월부터 10월에 집중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 지난 31일 찾아간 송 씨의 복숭아밭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1만 6528㎡ 규모의 복숭아밭 군데군데 가지가 부러진 것은 예사롭게 볼 수 있고, 아예 기둥이 뽑힌 나무도 적지 않았다.

넓은 밭 전체 수백 개의 멧돼지 발자국은 물론 잘 익은 복숭아는 어김없이 이들의 먹잇감이 돼 바닥에는 앙상한 씨만 수북하게 널려있었다.

송 씨는 "멧돼지가 얼마나 귀신같은지 아직 영글지 않은 복숭아는 건드리지도 않고, 곧 수확을 앞둔 것만 골라 먹는다"며 "주로 인적이 드문 새벽시간대 4~5마리가 때로 몰려와 먹어치우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때문에 송 씨는 복숭아밭 둘레에 울타리도 세우고 줄을 쳐 봤지만 교묘히 뛰어 넘어버리거나 아예 뚫고 들어오기 때문에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송 씨는 해당 구청에 전기 울타리 설치 등 수십 차례에 걸쳐 대책 마련을 요청했지만 구청은 예산부족이나 선례가 없다는 이유에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또 최근에는 동구청에서 해당 농가 주변의 야생동물 포획 허가를 내렸지만 정작 멧돼지가 자주 출연하는 야간이나 새벽 시간에는 인명사고 등을 이유로 포획활동이 금지되면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동구청 관계자는 "농가에서는 잡아달라고 아우성인데 총기 사용은 안전 문제로 경찰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며 "(농가에서) 전기 울타리 설치를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전지역에서 설치한 사례도 없고, 국비나 시비가 지원돼야 하기 때문에 내년쯤 돼야 설치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관계당국이 해당농가에 대한 피해지원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과수농가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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