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철 독자위원회 위원장


10년 전 스웨덴 구스타프 국왕이 우리 대학을 방문했을 때 안내를 맡았던 필자에게 가장 관심있게 던진 질문은 "한국에서는 아직도 우수 학생들이 이공계를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필자의 긍정적 답변에 한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라면서 국왕으로서 스웨덴 장래에 가장 큰 걱정이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지난 98년만 해도 대입수능 시험자 중 42%가 이공계를 지원하였는데, 99년 이후부터 27%로 급감한 이후 그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의 메카인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들조차 자녀들에게 이공계 진학을 선뜻 권장하지 않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자본주의 체제의 선진국 추세로 보아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도래할 것으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경제수준을 고려할 때 너무 이른 시기에 급격히 일어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80년대 후반 혹은 90년 초 미국·일본·영국·독일 등 선진국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일어났을 당시 이들 국가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상회했으나, 우리의 경우 1만 달러의 문턱에서 경제 성장이 멈춘 시점에 이런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마(魔)의 만불시대를 뛰어넘어 'N커브'의 경제성장 곡선을 그리며 2만 달러 국민소득으로 진입하느냐, 아니면 기술선진국 일본과 저렴한 노동력의 중국 사이에 끼어 'M 커브'의 하향곡선을 그리며 아르헨티나처럼 후진국으로 후퇴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21세기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과학기술력에 달려 있는 기술패권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직시할 때 이공계 기피 현상은 국가 생존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성장의 밑거름은 국민의 근면성과 값싼 노동력이었다. 그러나 2만 달러의 진입은 기술 개발을 통한 상품의 부가가치 창출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우수학생 이공계 유치를 위해 이공계 학생 장학금 지원, 입시제도 개선, 이공계 공직자 진출 확대, 이공계 출신 일자리 창출 등 나름대로 여러가지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우수학생 이공계 유인을 위한 일시적 미봉책은 될 수 있으나, 우리나라가 21세기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근원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처방이 아니다.

필자는 이를 위한 몇가지 근원적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과학기술자 국가인증제도를 도입하여 자격을 갖춘 과학기술자는 일정 연령까지 직업의 안정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공계 기피의 가장 큰 이유는 의사, 변호사 등 여타 전문직에 비해 직업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이공계 공부를 마치고 40세도 되기 전에 명퇴를 당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누가 이공계를 선택하겠는가.
또한 이런 불안정한 직업 환경 여건에서 어떻게 독창적인 연구개발을 할 수 있겠는가. 국가의 안보를 맡고 있는 군인의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듯이 21세기 기술패권주의시대에 국가경쟁력을 책임지고 있는 과학기술자의 직업이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비이공계 중심사회에서 과학기술 중심사회로의 국가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핀란드는 인구 500만의 작은 나라지만 이공계 중심의 국가 체질개선을 통해 국가경쟁력 3위의 정보강국으로 성장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리드해 나갈 테크노클라트를 양성해야 한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이공계 출신인 장쩌민 주석에 이어 또다시 이공계 출신의 후진타오를 새 지도자로 선출하고, 나아가 국가 최고권력기관인 상무위원 9명 전원을 이공계 출신으로 구성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21세기 국가의 운명을 과학기술 마인드를 가진 테크노크라트에게 맡기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21세기 기술패권주의 시대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공계 출신의 최고 통치자와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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