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지난 연초 세종시 문제와 4대강사업이 뜨거운 논쟁이 되었을 때 정운찬 국무총리가 이 지역의 존경받는 고위 성직자를 방문했었다. 그는 현안문제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편지를 성직자에게 전달하고 떠났다. 그런데 편지를 뜯는 순간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첫 머리의 '존경하옵는 朴○○님!'했는데 성이 틀린 것이다. 그렇게 성씨를 바꾸어 버린다면 큰 실례이면서 또한 얼마나 기분이 나쁜 것 인가.

국무총리의 서한, 그것도 정부현안을 설명하는 중요한 내용을 이렇게 했으니 결과는 뻔 한 노릇이다. 그 후에도 큰 사건이 여러 번 터졌지만, 그 때 마다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시저)가 암살 됐을 때 이를 정당화하려던 부르터스의 화려한 웅변도 없었고, 그 당시 안토니우스를 탄핵하여 죽음을 맞이한 키케로 같은 수사학과 열정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다 이번 '지방정권'의 변화는 앞으로 중앙정부와의 충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어 총리의 위상과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종시 문제, 4대강 살리기 문제, 무료급식 문제 같은 것은 핵폭탄급 지방정권의 충돌이 될 것이다. 야당 단체장, 진보 교육감, 야당 지방의회 등 트라이 앵글이라고 하는 지방정권의 3개 기둥이 일치하게 되는 곳에서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중앙권력과의 충돌은 면치 못 할 것이다.

더욱이 여당이 단체장이고 교육감은 진보주의자며 지방의회는 야당이 지배할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하겠는가?

대전과 충남·북은 그런 위기에서는 일단 벗어났다. 단체장들은 야당이지만 교육감들은 보수, 또는 중도주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권력이 독자적으로 북한과의 일정한 교역이나 방문 등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저 할 경우는 어떨 것인가? 중앙권력이 통제만 할 것인가?

국무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새로운 한국지방권력의 시험을 원만히 이끌기 위해서는 '정치를 아는 사람', 또는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 그런 국무총리가 필요하다.

과거 군사정권때도 정부와 국민과의 소통, 집권정당과 야당의 소통이 꽉 막힌 때가 있었다. 그때 이를 타개한다는 명분으로 모 명문대학 총장을 국무총리로 임명했었다. 그 총장은 제1성으로 '막힌 곳을 뚫겠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막힌 곳은 접근도 못하고 하차하고 말았다.

학교경영, 학문의 탐구로는 현실정치를 뚫을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정치의 벽'은 정치로 뚫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국무총리)으로 통하는 황희(黃喜)정승이 어디를 가다 두 사람이 혈투를 벌이는 것을 보았다.

정승은 한 사람을 불러 그렇게 싸워야 할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황희정승은 "응, 네가 옳았다"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반대편 사람을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번역시 "자네가 옳았다"하고 돌려보냈다. 옆에 수행하던 시종이 황희정승에게"아니, 대감님. 이놈도 옳다하시고 저놈도 옳다 하시니 어떻게 된 겁니까?"하고 따졌다. 그러자 황희정승이 대답했다. "그래, 네 말도 옳다"

이렇게 상대방의 주장을 들어주는데 해결의 비법이 있었던 것이다. 자기 주장만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국정이 어려울 때 마다 이를 칼 같이 해결하여 세종대왕의 가장 큰 신임을 받았으며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정치다. 싸움을 중단하고 모두 만족하여 손잡게 하는 그런 국무총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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