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선생이 공주 마곡사를 찾은 것은 1898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데 가담했던 일본군 육군 중위 쓰치다(土田)를 죽인 죄로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여 도피생활을 할 때였다. 그는 이곳에서 아예 스님이 되었다.

법명은 원종(圓宗). 이때부터 마곡사에서 '김구'라는 이름대신 '원종 스님'으로 불리어 졌다.

'백범일지'초간본을 보면 마곡사 계곡의 냇가에 앉아 삭발식을 가졌는데 "머리가 섬뜩하며 내 상투가 모래위에 뚝 떨어진다. 이미 결심한 일이건만 머리카락과 함께 눈물이 떨어짐을 금할 수 없었다..." 고 술회 했다.

그때 백범선생은 23세의 피 끓는 청년으로 정식 스님이 된 백범은 마곡사 뒤 태화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기도 하고 물을 긷는 등 여느 스님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수행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가슴아파 했다.

1년 후 백범은 마곡사를 떠나 금강산으로 갔는데 그가 다시 마곡사를 찾은 것은 1945년 해방이 되어서였다. 이때 공주에서 마곡사 까지 35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백범을 따랐으며 절 입구에서부터 스님들이 도열하여 조국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상해 임시정부 김구주석'을 열열히 환영했다. 백범은 대웅전 앞에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5미터 정도로 큰 나무가 되어 그때의 역사를 말해준다.

또 백범은 '내가 가장 신세진 곳 이라며'마곡사 법당 앞 사리탑을 중수하고 그 앞다리를 백범교(白凡橋)라 하겠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저격을 받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백범 서거 61주년을 맞아 마곡사가 백범을 기념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해 이곳 주지스님으로 취임한 원혜스님의 각별한 의지와 충남도 문화관광국, 그리고 공주시 지원으로 마곡사에서 태화산 기슭을 가로지르는 19km의 명상길을 조성하여 3개 코스 중 1코스 '솔바람 백범 명상길'이 5월 1일 개통을 보게 된 것.

원혜 주지스님은 백범의 삭발 터인 '삭발바위'옆에 다리를 놓고 '백범교'라 이름 짓고 6월에는 김구선생 서거 61주기 다례제와 백범음악회 등을 열어 선생이 남긴 나라사랑 정신을 계양한다. 백범이 산책하던 그 산길. 그리고 스님이 되었던'삭발바위'에서 토굴암을 거쳐 군왕대에 이르는 '솔바람 백범 명상길'은 그야말로 새 소리, 바람 소리, 계곡의 물소리에 딴 세상에서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제주도 올레길 못지않은 이 청정한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을 보고 서 있노라면 우리들 심장과 영혼은 어느새 정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내일 모레 6.2 지방선거에 나섰다 당선된 사람들은 물론, 떨어진 사람들도 꼭 한번 이 명상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길 권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나의 패배, 나의 승리는 부끄럽지 않았는가. 과연 백범선생이 삭발을 할 때의 그 결의를 가지고 나라에 몸 바칠 각오를 했는가. 정말 부정부패에 발목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지방선거 망국론(亡國論)이 나올 정도로 민심이 분열되고 동네끼리 반목하는 이 피해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심지어 공직사회 줄 세우기의 고질병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보복, 미움, 원망… 모든 것을 백범선생과 대화해 보라.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