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1950년 중국이 한국 전쟁에 개입할 때 중국정부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중국은 이제 막 장개석국민당과의 내전에서 통일을 한 마당에 미국과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계속 상황이 나빠지자 모택동은 반대를 무릅쓰고 그해 10월 18일 압록강도강을 명령하였고 유엔군에 막대한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전쟁기간 300만명이 꽹과리와 징을 치며 야간을 틈타 몰려오는 인해전술(人海戰術)을 벌였고 끝내 상황을 반전시켜 통일의 꿈을 날려 버렸다. 물론 중국군의 피해는 막대한 것이었다.

한국 전사편찬위원회 기록으로는 중국군 전사자가 18만4000명이나 되었고 71만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만1000명이 포로로 잡히는 피해를 입었다. 한국군과 유엔군을 합친 전사자보다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 가운데 모택동의 장남 모안영(毛岸英)의 전사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모택동은 아들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정신병자였기 때문에 장남 모안영을 혈통이 끊어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전선에 내보냈다가 11월 24일 평안남도 양덕군 산속에서 미군기의 폭격을 맞고 죽게했다.

모택동은 아들의 시신이 중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하고 북한 땅, 폭격 맞은 그 자리에 묻게 했다. '중국과 북조선은 혁명열사들의 선혈로 맺어 진 관계'임을 후세에 기리자는 뜻에서였다. 지금도 이 무덤은 북한에 남아 있어 중국에서 사절들이 올 때 마다 꼭 들르는 코스가 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북한정권을 유지하는 상징이다.

사실 북한이 미국의 경제봉쇄와 유엔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중국의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탈북자가 계속되는 정도이니 벌써 김정일정권은 무너져야했다. 물론 중국 지도층에도 북한의 핵개발과 세습적 권력승계, 해괴한 통치 방식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있다. 지난 해 유엔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안 표결에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도 이런 내면적 불만의 표출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북한은 중국에 골칫거리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에 마찰이 생길 때 마다 그 끈을 복원시켜 주는 것은 북한에 묻혀있는 모택동의 아들이 상징하듯 그 '혈연'의 역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월 26일 서해에서 우리 해군의 '천안함'을 침몰시킨게 북한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이미 모든 정황이 그렇게 나타나지만) 북한이 오리발을 내밀고 생떼를 써도 중국은 북한에 채찍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중국이 동북아 평화를 바라고 견지하는 나라로 인정 받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에 대해 중국은 우리나라와 '전략적 동반관계'라고 하면서 아직도 비통과 분노에 잠긴 한국에 침묵하지만 조사 결과 북한소행이 밝혀지면 중국은 분명한 태도로 채찍을 들어야 한다.

이번에도 중국이 침묵하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으로서, 세계 평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국으로서의 국격에 세계인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북한에 묻혀있는 모택동 아들의 무덤은 이제 흘러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끝내고 미래를 봐야 한다.

그것이 또한 6·25, 6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이 갖는 역사적 변화에 부응하는 것이고 동북아 평화를 공유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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