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권 확률 높은 앞번호 ‘가’번 선호
공천 순번 줄대기 … 과열·혼탁 부추겨

6·2 지방선거가 두달 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초의원 후보들이 ‘가’번 공천을 받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관련기사 3면

당내 경쟁자들보다 앞 번호, 특히 가장 먼저인 ‘가’ 번을 받아야만 당선 안정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현행 중선거구제으로 인한 현상이다.

◆순번에 담긴 비밀

기초의원의 기호는 정당 의석수에 따라 1번(한나라당), 2번(민주당), 3번(자유선진당) 식으로 번호를 매기고 같은 정당에서 두 명 이상이 후보로 나올 경우 1-가, 1-나, 2-가, 2-나 등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기초의원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한나라당 기초의원의 경우 1-가 번으로 번호를 받느냐, 1-나 번으로 받느냐에 따라 당락이 좌우될 수 있다. 유권자들의 앞 순위 선호 현상 때문이다. 가 번과 나 번을 누구에게 배정할 것인지는 정당에서 결정한다.

특정 정당에 대한 바람이 불어 가 번과 나 번 후보 모두 당선될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나 번을 받은 후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가 번 경쟁 치열

이 때문에 기초의원 후보자들은 ‘가’번을 받기 위해 당내 핵심 인사를 상대로 물밑 로비를 벌이거나 ‘출마 포기’라는 배수진을 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선진당 기초의원에 출마할 예정인 A 씨는 지역구의 B 국회의원의 비공식 보좌관을 자처하고 있다. A 씨가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B 의원의 측근을 자처하는 것은 공천에서 가 번을 받기 위한 계산에서 비롯된다. 당협위원장은 기초의원 후보의 순번을 결정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재선에 도전하는 서구의 한 의원은 “출마자 대부분이 ‘가 번=당선’이라는 공식을 믿고 있다”며 “빠른 순번의 공천을 받기 위해 줄 대기를 하는 후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가 번을 받기 위한 과열 경쟁은 혼탁 선거의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기초의원 출마자들 사이에서 ‘가 후보 프리미엄’은 엄연한 사실로 통한다”면서 “일부 지역에선 가 번을 받는 조건으로 당내 핵심 인사들에게 전달되는 공정거래 가격이 정해진 곳도 있다는 소문이 돈다”고 말했다.

◆여성 후보들 “가 번 주세요”

충북도여성단체협의회는 지난 달 31일 충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야 각 정당은 여성의무공천제를 준수해 여성후보를 전략 공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기초의원 선거구에 여성후보자 1인이 출마한 경우 여성후보자 단수 및 가 번 추천 등을 요구했다. 남성 후보에 비해 경쟁력 등에 불리한 여성 후보에게 당선 확률이 높도록 가 번을 배정하라는 압력이다.

◆이합집산 우려

한나라당 기초의원 선거에 공천을 신청한 C 씨는 가 번을 받지 못할 경우 출마를 포기할 생각을 갖고 있다. 선거구에서 3명의 기초의원을 뽑아 다소 여유가 있긴 하지만, 민주당과 선진당의 정당 지지율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기호를 1-나로 받을 경우 낙선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 C 씨의 생각이다.

당내 경쟁에 밀린 현직 기초의원들이나 출마 희망자 가운데 일찌감치 탈당 후 다른 정당으로 자리를 옮겼거나 다른 정당의 ‘빈자리’를 찾는 경우도 늘고 있어 기초의원 공천을 앞두고 후보들의 입·탈당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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