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음 2월 17일)

개화를 꿈꾸던 구한말 선각자 유길준(兪吉濬)이 최초의 대미외교사절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은 그의 나이 27세였던 1883년 9월이었다.

일행이 2개월여의 공식 일정을 끝내고 귀국선에 몸을 실을 때 유길준은 현지에 남는다.

에드워드 모스 피바디 박물관장이 최초의 국비 유학생인 그를 도왔고, 그 역시 7개월 만에 영어로 편지를 쓸 만큼 노력한 덕에 동부 최고의 명문학교 덤머 아카데미에 입학, 하버드대를 목표로 향학열을 불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조국으로부터 전해진 갑신정변 소식에 미국 유학을 접는다.

6개월간의 여정 끝에 조선에 도착했지만 김옥균 등과 친하다는 이유로 조정은 그를 7년간 연금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한국인 최초의 근대 서양 견문록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준비했다. 1895년 4월 1일 일본에서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 서유견문이 1000부 한정본으로 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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