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선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신문과 방송은 미디어 산업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산업의 구조나 정부규제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신문과 방송은 모두 정보를 가공하여 독자나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구독률이나 시청률 수준을 반영한 광고수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사업이다.

이처럼 두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매우 유사함에 불구하고 방송산업에서는 방송정보 송출에 필요한 주파수 제한으로 인해 신문산업과는 달리 사업자 숫자가 정부에 의하여 엄격히 통제되었고, 그 결과 독과점적인 산업구조가 모든 국가에서 유지되어 왔다.

방송은 신속히 현장의 영상정보를 실시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타 매체보다 강한 여론형성력을 갖는다.

또한 방송사업자는 국가소유의 주파수를 대가 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방송산업에게는 타 미디어 산업보다 훨씬 높은 공익성 준수 의무가 사회·정치적으로 요구되어 왔다.

공익성은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개념이나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제 방송사업자의 공익성 준수여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방송의 공익성은 방송사업자들이 다양한 여론을 편중됨 없이 공중에게 전달할 때 달성된다. 따라서 방송의 다양성은 공익성보다 덜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방송산업의 공익성을 평가하는 대용변수로 흔히 사용되었다.

방송서비스가 1920년대 처음 시작된 이후 방송산업은 주파수의 희소성이라는 근본적 제약으로 인하여 다양성이 꽃피우기 어려운 산업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케이블방송의 보급과 최근 통신방송융합으로 인하여 방송채널의 희소성이 사라졌다.

잘 알다시피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케이블방송의 채널 수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미 70개를 넘어섰다.

케이블을 통하여 TV를 시청하는 가구의 비중이 전체 시청가구의 87% 수준인 지금 방송채널의 희소성은 더 이상 방송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장애가 아니다.

방송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요인은 바로 인허가로 인한 진입장벽, 이종 미디어 기업간의 결합을 막고 있는 규제제도, 규제제도의 개혁을 가로막는 기득권층의 저항이다.

IPTV의 경우 시청자의 선택가능성에 중점을 둘 경우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 수만큼 채널이 존재하는 것이 된다.

즉 어느 한 시점에 만약 1만개의 프로그램을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다면 채널이 1만개 존재하는 것이다.

더 이상 채널의 희소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상파방송사업자가 아무리 부정해도 그들은 더 이상 지상파방송사업자가 아니고 IPTV와 케이블TV 보급이 확산될수록 순수 프로그램제작자에 가까워진다.

콘텐츠의 제작, 편성, 송출이 통합된 수직적 가치사슬 구조가 방송산업에서 유지되지 못하고 송출이 분리되는 것이다.

이미 영국의 BBC는 1997년 프로그램의 제작과 편성사업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방송송출 부문을 매각하고 전문 네트워크 사업자를 통하여 방송신호를 송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즉 BBC는 이미 10여년전 미리 산업구조변화를 읽고 앞서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방송사들은 아직도 지상파방송임을 외치면서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진부한 방송산업의 가치사슬을 쇄신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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