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9·11테러를 중세 '십자군전쟁'처럼 종교의 충돌로 보는 학자도 있다.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충돌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에서의 전쟁, 특히 스스로 몸에 폭탄을 안고 표적에 뛰어드는 자살 폭탄은 종교적 신앙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신앙의 힘이 캄보디아의 경우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사원을 만들었고 인도에서는 바위산을 뚫고 들어가 대규모 석굴사원을 이룩했다.

정말 신앙의 힘은 대단하다. 그래서 인도 카스트제도의 3000년 굴레처럼 그 신앙이 가져 오는 문화도 쉽게 무너질 수 없는 것일까?

몇 년전 인도 한 지방에서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된 여자가 주방에서 불에 타 죽은 사건이 발생했었다. 단순 화재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하려고 했으나 친정 부모의 끈질긴 요구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됐다. 수사결과 여인은 시집에서 결혼 지참금으로 요구한 TV 한 대와 남편의 오토바이를 마련해 주지 못하자 폭행을 당해 죽었는데 화재로 죽은 것처럼 위장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여자는 결혼 때의 지참금, 소위 '다우리'에 피눈물을 흘리지만 반대로 돈 몇 푼 받고 남자에게 팔려가는 경우도 있다.

인도에서 풀란 데비 사건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폴란 데비는 인도 카스트신분제도에서도 가장 낮은 '불가촉천민'(Sudra)였는데 1974년 11세 어린 소녀의 몸으로 20세나 더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그 대가로 받은 것은 소 한 마리와 자전거 1대. 힌두교에서 여자는 철저히 소외당하기 때문에 그녀는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를 받아야했다.

그녀는 마침내 시집을 나와 도둑의 무리를 이끌며 자신을 강간한 24명의 마을 남자들을 죽이는가 하면 단체를 만들어 여성평등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으나 뿌리 깊은 전통과 관습에 투쟁을 포기하고 경찰에 자수를 한다. 1994년 석방되어 2년 뒤 하층민 집단 거주 지역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당선까지 됐다.

그러나 인도의 완고한 전통의 벽은 무너질 수가 없었다. 그녀는 2001년 7월 뉴델리에서 괴한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인도여성의 지위다. 물론 법으로는 이런 여성학대, '다우리'제도가 철저히 금지돼 있으나 종교의 벽은 너무 높아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 전통에 따라 남편을 따라 죽는 '사티'가 아직도 살아있고, 과부들의 재혼은 금지된다.

한 보도에 따르면 1년에 평균 5800명 이상이 '다우리'(결혼지참금) 때문에 죽어가고 밝혀지지 않는 숫자까지 합치면 희생자가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휴대용 성감별기가 암암리에 거래되는데 꽤 비싼 값이지만 훗날 딸을 낳아 지참금 때문에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낙태를 하는 끔찍한 길을 택하기 위해 잘 팔린다고 한다.

'여자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두꺼운 관습과 전통이 여자를 때리고 울린다. 인도를 떠나면서 하층민들이 경제력과 교육을 통해 카스트 굴레에서 조금씩 탈출을 시도하듯 하루 속히 이곳 여자들의 눈물을 씻어 줄 개혁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면 12억 인구의 거대한 인도는 정말 강국이 될 것이다.

<인도 뭄바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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