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요즘 인도는 드넓은 평야에 밀과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군데군데 이제 막 하얀 목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쌀농사는 일 년에 4모작이 가능할 정도로 연중 계속되는데 우리처럼 모내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논에다 볍씨를 뿌리는 식이었다. 벼농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쌀'이라 던지 '밥'과 같은 우리말이 인도 말과 비슷함을 발견하고 한결 정답게 느껴졌다. 역시 벼농사가 인도에서 전래된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풍족한 땅인데 인도 사람 대부분은 왜 가난하게 사는가? 더욱이 인도는 수학(數學)에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어 '구구단'이 19단까지 있고 0이라는 수의 개념을 최초로 시작한 민족이 아닌가? 또 IT강국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의문은 며칠 동안 그들 생활 속에 들어가 보면서 쉽게 풀릴 수 있었다. 우리를 태우고 다니던 차량의 기사는 호텔에 들를 때 마다 언제나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절대 호텔 안으로 들어 올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인도 사회의 전통적인 '카스트(caste)’ 계급의 네 번째 ‘수드라(sudra)' 계급인 것이다. 노예, 빨래하는 사람, 자동차 기사, 청소부가 여기에 속한다.

호텔만 해도 카스트계급이 공존한다. 호텔 사장은 카스트의 최고인 브라만(사제·귀족)또는 두 번째인 크샤트리아(무사·고급관리)이고 지배인이나 경리, 일반 직원은 바이샤(농민·상인·일반서민)이다. 네 계급 외에 '불가촉민(不可觸民·하리잔)'이 있다. 이것은 천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천민인데 상위 계급들과 신체적 접촉을 하면 부정하게 되었다고 몸을 씻거나 손을 씻어야 한다.

계급이 다르면 서로 결혼을 할 수 없고 아무리 뛰어나도 신분상승은 안 된다. 누구나 예외 없이 태어나는 대로 카스트 계급 중 어느 하나에 운명적으로 귀속돼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성공하거나 출세하겠다는 욕망도 없다. 죽어야 그 신분은 해방 된다.

따라서 죽어 태어날 세상에나 기대를 거는 것, 바로 이것이 카스트의 벽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다양화되면서 대도시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요지부동이다.

그밖에 세계적인 문명국이면서도 인도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몇 가지를 열거하면 첫째 시간관념이 없는 것. 약속시간은 그냥 기준 시간일 뿐, 늦었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고 시간에 대려고 서두르는 사람도 없다. 한국 사람의 '빨리빨리' 습관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인도 거리에 우리 한국 자동차가 즐비하고 호텔이나 사무실, 공항대합실에 한국제품의 TV나 에어컨이 보란 듯이 놓여 있는 것은 '빨리빨리' 정신과 강한 성취욕이 있어서가 아닐까?

일반 관청의 간부집무실은 물론 주지사실까지도 차를 나르는 여직원이 없고 맨발의 슬리퍼 신발을 신은 남자가 하며 호텔 식당이나 청소역시 남자가 도맡아하는 사회, 아직도 지방에 내려가면 화장실이 없어 아무데서나 일을 보아야 하며 휴지 대신 손으로 닦는, 그러면서도 그것을 친자연적이라고 말하는 인도, 차라리 영어가 공용어 역할을 하는 게 편리할 정도로 318개의 언어(그중 15개 언어를 대표적으로 사용)가 복잡하게 얽힌 인도. 그래도 더 없이 착하고 행복해하는 그들 표정은 진정 인간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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