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원 대전기독병원장

우리 의료계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지 지난해로 백년이 지났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말 세계의사회를 개최하고 일백주년 행사도 거창하게 치뤘다.

따라서 세계의사회 회장도 우리 나라에서 배출됐고 그만큼 세계에서 차지하는 우리 의료계의 위상도 높아졌다. 10만여 명의 의사 중에서 8만 5000명이 개원해 1차에서 3차까지의 병·의원급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괄목할만한 수준 성장과 발전에도 우리의 자화상은 위축되어만 가고 있다. 즉 의사의 의권과 인권이 그러한 위상과는 정반대로 표출되는 시대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의권(醫權)이란 사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이며 그 이면에는 책임까지 있을 수 있는 포괄적의 의미다.

이러한 고유의 영역이 침범되며 유린되는 것에 대한 의료계의 아픔이 있다.

강제로 1977년 전국민 의료보험이 됐고 그사이 배제됐던 불만이 2000년 의약분업이라는 정책으로 폭발했다.

그 당시 의료계가 염려한대로 의료보험 재정은 10년이 흘렀어도 2000억 원의 적자(지난해 기준)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것도 각종의 규제로 그나마 의권이 유린된 결과였다.

즉 각종 법률, 의료법 및 그 시행령, 시행규칙, 각종 고시, 심평원과 의료보험공단의 무차별적인 실사 및 환수 조치였던 것이다.

보험자의 권리, 즉 소비자의 권리만 강조한 나머지 의료쪽은 완전히 의료의 주체이면서도 그 역할에 대해서는 제한되고 폄하된 채 이끌려진 결과였던 것이다. 조금만 잘못에도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군림해온 그들에게 의료계는 이제 손과발을 완전히 들어버린 것이다.

환자를 많이보면 많이 본다고 진료비를 차감해 지급하고, 좋은 약을 쓰면 재정에 손실있다고 해서 제한하고, 병상을 늘리면 인원·시설 등에서 최고의 수준을 요구하면서 그것이 되지 않으면 또 차감하고, 민주사회에서 시장경제의 원리조차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 의료계인 것이다.

정부의 약물사용 평가(DUR)도 약의 오남용을 방지해 국민건강을 지키는 것으로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처방내역을 실시간으로 감시해 건강보험의 약제 절감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환자의 정보와 의사의 진료정보를 자신들의 통제하에 놓으려는 발상인 것이다.

군복무 기간 또한 우리들에게는 불리한 여건이다. 훈련기간을 포함해 모두 38개월간 공보의나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데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의사들의 입증책임으로 소신진료를 기피하게 했던 의료분쟁법이 국회 법사의 법안소위원회로 넘어간 상태이지만 언제 실행될지 모르는 형편이며 또한, 최근 대전을 떠들썩하게 한 약가 리베이트는 의사들의 판단 잘못이 일차적인 것이지만 정부의 약가 정책의 실패에도 구조적인 잘못이 있는 것이다. 즉 합리적인 약가 결정구조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의권은 이래저래 부글부글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의권을 축소시키는 것 뿐이다.

자본, 기술, 경영 어느 것 하나 기여한바가 없는 의료의 통제자들은 카타르시스의 칼날을 항상 의료계에 향하고 있다.

사실 인권이란 용어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향유하는 인간상태의 권리라는 의미인 바 우리 헌법 10조에서 36조에 걸쳐있는 자유, 관습법에 따른 인간으로서 존엄 등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모든 권리다.

그러나 의사들에게 있어서는 때로는 어이없게도 흔히 인권의 침해에 대한 형태가 나타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폭언과 폭행이며 심지어는 의사가 살해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인간의 권리는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그 대가를 모든 사람들이 되돌려 받는 것이 아닐까?

의사들의 의권과 인권의 상승도 곧 국민들의 삶의 전환을 상승 시킬 것을 의사로서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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