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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門<1228>

紅裳에 잠긴 양반들 20

세자는 신부 휘빈에게 혹하여 서연(書筵)을 멀리하고 집현전 학사들 대하기를 꺼리게 된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성삼문은 세자가 한밤중에 집현전으로 자기를 찾아온 까닭이 바로 그같은 고민거리를 호소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러나 모르는 척하고

「동궁 저하, 여색에 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이 오니까?」

「근보는 내가 오늘 저녁 석강(夕講)도 빼먹은 걸 모르시오? 요즘 내가 주야로 동궁빈처소에만 파묻혀 있으면서 조강과 서강에 빠질뿐만 아니라 주강에도 번번히 빠지는데,왜 부왕께 상주하여 혼을 내주시지 않는 거요?」

?성삼문은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었으나 일가에는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세자가 아직 어리지만 신부에게 침혹하여 학문 닦기를 게을리하는 자신을 교도하지 않는다고 스승을 나무라는 것은 싹수가 없고서는 있을수 없는일 아닌가.

『저하,바야흐로 깨가 쏟아진다는 신혼이신데 저하께서 한동안 세자빈 처소에서 나오시지 않는다 하여 어찌 대왕 전하께 밀고를 할 수 있겠습니까?』

『밀고라니. 그게 왜 멀고요? 시강학사들이 고하지 않아도 부왕께서 언젠가 아시게될 일을 왜 상주할 생각을 아니하시오?』

?자기의 잘못을 왜 부왕에게 고하여 혼내주지 않느냐는 것은 자책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스승 성상문에 대한 신뢰감이기도 하였다.

『때가 되면 이 성삼문이 대왕전하께 상주하지 않아도 다른 학사들이 가만있지 않을것입니다』

『때가 되면이라니, 지금은 때가 아니란 말씀이오?』

『에, 신혼이시니 좀 더 두고 본 후에 여전하시면 그때가서 …』

『휘빈은 무서운 여자요. 내가 동궁빈 처소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상사 뱀처럼 내몸을 휘휘 감고 놓아 주질 않는구려. 오늘저녁에도 동궁빈의 시녀 호초가 궁정을 샅샅이 뒤지듯이 기웃거리고 다니면서 나를찾는데 내가 마치 수배된 범인이 된 기분이오. 내 오늘 저녁에는 휘빈 속 좀 타게 하려고 일부러 수강궁(壽康宮) 익위사(동궁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곳)에 피신하여, 피신이란 말이 우습지만, 거기가 숨어 있다가오는 길이오. 몸은 하나인데 집현전 학자들이 기다리고, 휘빈이 찾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성삼문은 고개를 들고 세자를 우러러 보며 웃음을지었다.

『저하,휘빈에게 싫증이 나신 것입니까?』

『아니오. 그렇지는 않소.휘빈이 없는 세상은 상상만 해도 살맛이 없어진다오』

『솔직하신 말씀이십니다.사람은 학문을 폐해서도 안되지만 색을 멀리하고 살 수도 없는 것입니다.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는 것이 왜 나쁘시겠습니까. 과유불급이지요.민간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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