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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門? <1227>

조 종 사 글

임 용 운 그림

달이 휘영청 밝아 삼라만상이 깊고 푸른 물속에 잠긴 듯한 밤이었다. 바람이 낙엽을 쓸며 달려 가는 소리가 쓸쓸하였다.

내시가 자정(子正)을 알리며 궁정을 한바퀴 돈 것도 오래되었다. 왕과 왕후가 잠든 대조전 주위를 돌며 파수를 보는 무예청별감들이 요령 대여섯 개를 매단 장대로 땅을 치는 소리가 바람결에 아스라이 들리다 말다 하였다.

그날 밤, 집현전에 홀로 남은 숙직은 성삼문(成三問)이었다.

밤이 깊어 만뢰가 괴괴한데, 성삼문은 등잔불을 밝혀놓고 서안(書案)에 의지하여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너무 독서에 열중한 그는 집현전 가까이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느끼지 못하였다.

?『근보(竊甫)!』

?하고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성삼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방문을 돌아다보았다.

근보는 성삼문의 자(字)이다.

「근보!」

두 번 부르는 소리에 세자의 목소리인 줄 알아차린 성삼문은 부리나케 버선발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키가 껑충하게 큰 세자가 시종하나도 거느리지 않고 혼자 와서 우두커니 처마 밑에 서있었다.

『동궁 저하, 야심한데 어인 행차시오니까.황공하여이다』

?『자지 않고 무엇하오, 자정이 지났는데』

『숙직인데 자서 되겠습니까』

『숙직이란 원래 잠을 자면서 밤을 지키는거 아니오?』

『등화가친지철?독서를 아니하면 어느 세월에 학문이 늘겠습니까』

『근보는 학문밖에 모르는구려. 그러니 내가 만날 때마다 괄목하게 되는 모양이오』

『아이구,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하』

『내가 들어가면 방해가 되겠구려. 잠시 이야기 좀 할까 하고 찾아왔는데』

?『저하, 어서 들어오시오』

성삼문은 세자를 안으로 인도하여 그가앉았던 자리를 내주고 웃목으로 물러나 앉았다.

『음. 이게 중국의 운서(韻書) 아니오?』

세자는 서안 위에 펼쳐져 있는 책과 성삼문이 그책을 읽으면서 끄적거린 비망록을 들여다 보았다.

『예. 홍무정운(洪武正韻)이옵니다』

『중국의 운서는 공부해서?무엇하오. 경사(隧史)를 공부하기도 끝이 없는데』

?『대왕 전하께서 중국의 말이 우니나라 말과 다를뿐 아니라, 한자가 어려워서 백성들이 글로써 뜻을 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재위중에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우리 글을 창제하실 뜻을 말씀하시어 우선 중국의 운서를 연구하고 장차 중국에 왕래하면서 그곳 학자들을 만나 현지의 음운을 배워와서 우리글,창제를 도우려는 포부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오,참으로 장하시오. 군신이 백성을 사랑하는 뜻이 그같이 원대하고 거룩한데, 세자인이 몸은 어린 나이로 여색에 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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