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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門 <1225>

조종사 글·임용운 그림

사춘기가 된 세자는 서너 살 연상에 염야한 자태와 풍만한 육체를 가진 휘빈 김씨에게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휘빈이 동궁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하기 전까지만 해도 밤낮 없이 자선당(資善堂)에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 학문을 닦는데 몰두하던 세자가 변해도 많이 변하였다.낮에 자선당에서 독서를 하다가 석양이 비끼기가 바쁘게 휘빈의 처소로 달려가는 것까지도 좋았다.

주강이 지겨운듯 하품과 졸음이 많아지고 시강(侍講)하는 학자들과의 문답에 동문서답을 하기 일쑤였다. 머리속에 휘빈의 요염한 얼굴과 풍성한 나신(裸身)만 어른거리니 공부가 제대로 될리 없었다.

세자가 휘빈의 처소에 한번 들어가면 자선당으로 돌아올 줄모르니 석강(夕講)에 나온 집현전 학사들은 잡담을 하거나 무료히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다.

그 날도 집현전 학자들은 초저녁부터 자선당에 모였으나 보루각의 내시가 대궐 뜰을 돌면서 큰소리로 해시(亥時)를 알릴 때까지 세자는 자선당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도 동궁저하를 모시고 시강하기는 틀린 것 같소이다」

「그만 파하고 흩어지십시다. 동궁저하께서 지금 나오신다 해도 무슨 공부가 되시겠소.주강때도 하품을 하고 꾸벅꾸벅 조시는데」

「우리가 세자 저하를 잘못 교육하고 잘못 보도한 죄가 크오」

「어찌 우리들이 죄이겠소.동궁 저하는 지금 신혼(新婚)이오」

「 신혼이 유죄구려」

「그렇소이다. 우리들 신혼 때는 어떠했는가 반성하면 동궁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열두살에 장가들어 신혼 때는 음양의 이치도 모르고 지냈소」

?「그럼 신부는 몇 살이었소?」

「나보다 네 살 위였다오」

「그럼 음양 배합하는 방법은 신부가 가르쳤겠구려?」 와 하고 웃음보가 터졌다.

「중국에는 조혼하는 풍습이 없는데 아조(我朝)에서는 조혼 풍속이 무슨 전통같이 되었오.동궁저하가 열 네 살이신데 휘빈이 삼사세 연상이라니 아무래도 휘빈이 동궁저하를 치마폭에 흽싸고 밖으로 나오시지 못하게 고혹하는 모양이오」

?「휘빈이 빈궁으로는 너무 염야하게 생겨서 걱정입니다.동궁 저하께서 몸도 섬약하시고, 기질이 과민하신 것 같으면서도 다정다감하시기 때문에 붙인 휘빈의 유혹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시는 것 같소이다」

「조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신체가 조숙하고 연상인 신부가 어린 신랑을 꼬이고 호리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경험이 풍부하시구려.하하하」

「하하하, 나만 그러하오? 아마 여기모인 집현전 학사님들 모두가 유경험자일 것이오.조혼을 안하면 양반이 아니잖습니까」

고려 말엽에 원(元)나라가 고려에 공녀(貢女)를 요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조혼하는 풍습이 생겼으며 조선도 명(明)나라에 공녀를 바쳐야했기 때문에 특히 왕실과 사대부 집안에서는 십세 전후에 서둘러 자녀를 혼인시키는 것이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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