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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門 <1222>

세종은 소헌왕후 심씨와의 사이에 팔대군(八大君)과 두 공주를 두어.해동의 요순이라는 칭송을 듣는 외에도 가정적으로도 무척 다복한 임금이었다.후궁도 있고 후궁 소생의 군과 옹주도 많았으나 정실부인 심씨와 대군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였다.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으나 병권을 쥐고 있었는데 세종의 장인인 청천부원군 심온(沈溫)이 태종의 미움을 사 평지풍파가 일어났다.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앉은지 수일만에 병조참판 강상인과 총제(摠制=軍의 栯抑棚者)심정이 금군을 개편하면서 세종에게만 고하고 상왕인 태종에게는 고하지 않은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내 비록 부덕하고 나이 많아 상감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지만 병권이 내 장중에 있는데 누구 마음대로 상감에게만 고하고 나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금군을 재편성한단 말이냐.주모자를 국문하도록 하라』태종의 대갈일성에 병조는 전전긍긍하였다.

병조판서 박습이 변명을 하고 강상인과 심정이 상왕에게 품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잘못이라며 대죄하였다.태종은 노여움이 풀려 병조의 고관들만 교체하고 사건을 일단락지었다.그러나 곧바로 심정의 형 되는 청천부원군 심온은 현직 영의정으로 명나라에 사신가면서 세종에게만 숙배하고 태종에게는 가지 않은 것이 또 사단이 되었다.

더구나 심온이 한양을 떠날 때 심씨의 세력을 두려워 하고 아첨하던 무리들이 모화관까지 배웅을 하였는데 임금의 거동 행렬이 무색할 지경이었고 전별이라 하여 공공연히 금품을 수수하였다. 태종이 소문을 듣고 진노하였다.

『상황으로 물러난지 한 달도 못되었는데 내게 찾아오는 신하가 아무도 없는가 했더니 내게 숙배도 아니하고 연행(燕行)길에 오른 심온의 행차를 전송하는 인파가 임금의 거동을 무색케 하였다니 주객이 전도되고 군신이 뒤바뀌지 않고서야 이런일이 있을 수 있느냐』

태종은 전부터 외척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꺼려 외척인 심씨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않고 있던 참이었다.병조좌랑 안헌오가 불난데 부채질을 하였다.

『상왕 전하.신 병조좌랑 안헌오 상주하오.심정.박습.강상인 등이 전부터 모의하여 왕명이 두 군데서 나오니 국사가 잘될리없다고 비방하였습니다.상왕 전하께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면 그만일터인데 대권을 양분(兩分)하여 일일이 간섭하시니 어느명에 쫓아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공공연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태종은 대궐 뜰에 국청을 차리고 심정, 박습, 강상인 등을 잡아들여 형틀에 묶어놓고 주리를 틀며 친국하였다. 불똥은 명나라에 사신간 영의정 심온에게까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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