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젠 恨 풀고 싶어요"

사기막골 피란민 학살 피해자 이교순씨

「그런 일을 당하고도 멀쩡하다면 사람도 아니죠.진물이 흐르는 발과 한(恨)이 쌓여 병이 된 심장 때문에 받는 고통도 가슴에 맺힌 한 보다 아프지는 않습미다」4일 오전 11시 유성구 계산동, 미군의 피란민 학살 현장에서 안난 이교순씨 (73)는 자식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평생 맺힌 한(艮)을 풀어내다 끝내 통곡했다.이씨는 해방후 스물 한살 꽃다운 나이에 석교동 윤씨 집안에 시집갔다 3년만에 남편을 잃고 6·25전쟁이 터지자 시부모의 권유로 친정인 사기막골로 피란을 왔다.

1950년 7월 18일께 옆동네로 피신했던 이씨는 동생과 식량을 가지러 20일 오전 친정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이희재·작고)가 한여름 낮은 더우니 해질 무렵 돌아가라고 해 방안에 있는데 갑자기 쌔액하는 비행기 소리가 나고 총성이 이어졌습니다. 마당에 나와 손을 흔들라는 마을 어른들의 고함소리에 뜰에 나와 하늘을 보는데 비행기 날개에 햇빛이 번쩍이더니…』종전후 10여년을 목발에 의지하던 이씨는 35세이던 지난 61년 주변의 권고로 강모씨와 재혼했다.

이씨는 찢어지게 가난한 시집과 13남매를 둔 홀아비 남편을 위해 장애를 딛고 장마다 돌며 쑤세미장사, 멸치 장사를 해 자녀들을 교육시켰으나 강씨와 사별한뒤 근근히 모았던 재산마저 모두 잃고 강씨와의 사이에 난 남매를 의지해 살고 있다. 『아직도 고름이 흐르는 발, 치료나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지난 80년대 청와대와 서울 공군부대 대법원에 진정서를 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평생 맺힌 한을 풀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겁니다』이씨는 보기 흉해 아들에게도 보인적 없다는 발을 양말에 감춘뒤 격앙된 감정을 추스리지 못해 한동안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宋寅杰 기자>

【사진】미군기의 유성·사기막골 양민학살사건 부상자 이교순씨(73)가 당시 부상당한 다리를 내보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朴宰用 기자>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