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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門 <1220> 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紅裳에 잠긴 양반들

「딸덕에 부원군 한다는데, 호초가 후궁이라도 되는 날에는 원주 목사 아니라 강원감사(江原監司)가 되실지도 모르지」

「나 같은게 후궁이 되면 후궁 못될 궁녀가 있겠어요」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방으로 들어가자구」

감동은 호초와 하봉래를 안방으로 인도하였다. 호초는 유리알처럼 번쩍거리는 장롱과 의롱등 값비싼 가구들을 둘러보며, 감동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으나 별로 부러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불청객이 찾아와서 미안해요, 언니」

「무슨소리야 우리가 얼마만에 만났는데」

「실은 세상 이목을 피해서 숨어 사는 언니를 당황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나의 진심을 믿어 주셍」

「무슨 뜻이지?」하봉래가 대신 말하였다.

「호초 항아님 아버님이 강원감영에 일을 보러 가셨다가 마침 부임인사차 감영에 들른 평강현감(平康縣監)을 만났는데 그 분이 누군지 아세요?」

「?」 감동이 어리둥절하며 호초와 하봉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최현감(崔縣監)이 전라도 무안에서 강원도 평강현감으로 전임하셨대요」

「… …」 감동은 떨떠름 하였다. 지금 상중에 있는 자신에게 저너남편 최중기의 소식은 조금도 달가울것이 없었다. 호초가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외지에서 우연히 만나셨으니 얼마나 반가우셨겠어요. 나이 차이는 많지만
세의(世議)가 두터운 사이 아닌가요. 최현감께서는 우리 아버지한테 전라도 무안현감 재직시에 부인이 서울 친정에 비접나간다고 핑계하고 가출 한 후 행방불명이 되어 처가(妻家)로 수세를 보냈지만 지금이라도 부인이 나타나면 지난일은 불문하고 재결합하고 싶다고 하시더래요. 전라도 순창인가 어딘가 유모집에 가서 기자치성을 드리다 가출했다면서요? 최현감께서는 부인이 바람이 나서 가출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들을 생산하지 못한 죄 때문에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가출한 것으로 믿고 계시더래요. 언니가 가출한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저께가 우리 조부모님 회혼식(回婚式)날이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도 특별 사가(賜暇)를 얻어 상경하시고, 나도 입궁한 후 두 번째휴가를 얻어 참으로 오랜만에 부녀가 상봉했잖아요. 언니가 가출했다는 이야기는 아버지한테서 들었고, 언니가 우의정대감 소실부인으로 개가 하였다가 불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하봉래한테 들었어요. 최현감께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신것 같으니 언니, 지난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재봉춘(再逢春)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보는게 어떻겠어요?」

호초는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감동의 표정은 이미 차가운 자조(自嘲)로 굳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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