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경남의 한 중소도시에 들렀을 때다. 당시 동네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는데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 때문이었다. 이유인즉 신임 경찰서장이 호남 출신인데 영남 사람들을 죄다 감방에 잡아들인다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선 우리가 죽지 않으려면 뭉쳐야 한다느니 위에다 탄원해야 한다느니 하며 신임 경찰서장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영·호남 지역갈등이 지금보다 더 심할 때라 호남 출신 서장의 행보와 언행 하나하나에 대한 주민들의 서릿발은 매서웠다. 1년 여 짧은 임기동안 연고지를 피해(鄕避) 배치된 관료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신있는 정책을 발휘했을리 만무하다.

향피(鄕避)제는 고려시대 때 상피제(相避制)가 근간이다. 중국 송나라의 제도를 참작해 실시한 상피제는 관료체계의 원활한 운영과 권력의 집중·전횡을 막기 위해 일정범위 내의 친족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에 제수할 수 없게 한 제도다. 씨족이나 문중의식이 매우 강한 우리나라 특성상 관료가 학연지연 등의 이유로 토착세력과 유착할 개연성을 차단하고자 했다. 당시 사회적 폐해는 극심했다. 특정 친족에게 인사권과 병권이 집중되며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고 권력을 대물림하는 병폐가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폐단이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다다르자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상피제다. 상피제는 관료의 정실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지만 반면 지방토호의 세력화가 두려워진 점도 있다. 왕권 강화와 상충되는 지방토호에 대한 견제장치로도 상피제는 필요했음이다.

요즘 향피(鄕避)제도가 또 다시 관가에 회자되고 있다. 공직자의 연고지 배치를 최소화한 향피제를 통해 토착비리 척결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묻어난다. 경찰과 검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 중심으로 향피제가 부분적으로 도입됐거나 도입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에선 부패의 사슬을 원천적으로 끊고 대공무사(大公無私)한 공직상에 대한 기대가 흘러나온다. 반면 지역실정에 어두워 괜한 억지과욕이 불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또 논란을 떠나 현재 공직사회가 향피제를 도입할 수준임을 간접적으로 자인한 셈이니 국민 입장에선 그리 반가운 일만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할 만큼 대사무공(大私無公)한 인물이라면 애당초 공직자 자질이 없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대전·충남 경찰 총수인 신임 지방경찰청장들이 새로 부임했다. 10년 만에 다시 시행된 향피제에 대해 경찰은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향피제가 됐든 연고지 우선배치가 됐든 제도를 맹신할 필요도, 탓할 것은 없다는게 그 간 역사속의 교훈이다. 결국 조직의 리더가 운용의 묘미를 어떻게 살리고 위민행정과 조직 화합에 대한 의지가 어느정도냐가 관건일 것이다. 사람을 천거함에 있어 사적 관계보다 재능이나 인품에 치중하고자 한 향피제라니 향후 신임 수장들의 행보를 기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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